[시론] 김영란법,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이다. 지난달 27일부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상 식사 접대비 한도가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법 시행 이후 8년 만의 첫 인상이다. 법이 처음 시행된 2016년 95.46이던 생활물가지수는 올해 7월 116.36으로 22% 가까이 폭등했다. 4년 전 9000원이던 서울의 냉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은 1만1923원으로 32.5%나 올랐다. 치솟는 외식물가에 뒤늦게 식사 접대비 한도를 올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애초에 김영란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모순덩어리 법이었다. 사립학교 교직원, 기자 등 공직자가 아닌 이들도 법 적용 대상으로 삼고 나라에서 식사비, 경조사비, 선물 액수까지 일일이 정해주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그래 놓고 내수경기가 어렵다며 식사비를 올리고 명절 때는 농·축·수산물 선물 비용을 두 배로 늘려준다. 선물 품목, 날짜에 따라 가격 상한액을 법으로 정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처음 도입할 땐 부패를 일소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 최후의 비기인 것처럼 요란했지만 정작 법 시행 이후 10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청탁금지법은 무용론에 직면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법 적용 대상을 251만 명 정도로 보는데 2021년 제재 처분을 받은 공직자는 321명에 불과했고 법 위반 신고 건수도 2018년 4386건에서 2020년대 들어선 연간 1000건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공립대 교수들의 외부 강의료도 청탁의 통로로 의심하다 보니 유능한 석학이 마음 놓고 외부 강연을 다니기 어려울 만큼 온 공직사회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놨다.

거기다 법 대상에 공직자 가족까지 포함해 잠재적 범죄자가 1000만 명이 넘는 아이러니한 법이 됐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다른 법으로도 충분히 의율할 수 있는데 이런 혹 같은 법이 무엇에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마치 도로교통법을 만들어 새끼 치듯 도로교통단속법, 도로교통단속강화법, 도로교통단속강화유지법 등의 법을 양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윤리, 합의, 자정의 영역을 남겨두지 않은 채 법이 너무 많은 것을 강하게 규율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김영란법이 대표 사례다. 식당과 상점에서 김영란법에서 정한 가격 상한을 넘지 않는다는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은 애교다. 지나친 경직성과 퇴행성으로 농어민과 소상공인들만 골탕 먹이고 정작 중요한 공직사회 부패 청산에는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과연 김영란법이 나온 이후 공직자의 거악이 줄고 게이트가 없어졌는가? 선출된 공직자의 부패는 차고 넘쳤는데 그동안 이 법에 저촉돼 단죄된 것을 보면 정치적으로 악용한 몇몇 사례 외에 기억나는 게 없다. 서민에게만 으름장 놓는 법인 것 같아 참 그렇다.

물가는 계속 오를 텐데 이 금액을 조정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논란을 야기하며 국회와 여야가 다루고 심지어 국무회의까지 열어야 하니 계속 이리 해야 하는가? 피해도, 부끄러움도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앞으로는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선물 받지 말라 하고 뒤로는 내수경기 진작해야 한다며 선물 가격 올려주는 모순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결혼, 장례 등 인생의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축하하고, 함께 위로하고 싶은 사람에게 부조를 얼마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해야만 하나. 사회 합의를 얻지 못한 채 무리하게 도입된 법은 결국 사문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사문화한 법은 수많은 잠재적 범죄자만 양산해낸다. 문제투성이 법은 없애는 게 낫다. 이제 선언적 효용은 만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