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가 운영하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수천만 대가 들어간다. HDD는 1956년 개발된 보조기억장치로 사진, 문서, 동영상 등 각종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 다른 빅테크까지 합하면 최소 수억 대의 HDD가 데이터센터에 들어가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데이터 처리량이 폭증하면서 HDD 최대 수요처인 데이터센터에서 격변이 일고 있다. 기업들이 HDD보다 정보 처리 속도가 빠르고 전력을 덜 소모하며 발열도 적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SSD 기반이 되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도 호황 국면에 들어섰다.
"빅테크도 줄섰다"…eSSD 붐 타고 낸드시장 1000억弗 돌파

낸드플래시 시장 1000억달러 첫 돌파

3일 시장조사 업체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매출 기준)은 내년에 처음 1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해 390억달러이던 시장 규모는 올해 770억달러로 두 배 커지고, 내년에는 사상 최대인 1030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계속 저장할 수 있는 장치다. 빠른 정보 처리에 쓰이는 D램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양대 제품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필수 반도체지만 여러 업체가 뛰어든 탓에 돈을 벌기 어려운 ‘계륵’ 같은 사업으로 불렸다.

‘미운 오리 새끼’였던 낸드플래시 시장을 ‘백조’로 바꾼 건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기업용 SSD’(eSSD)다. 낸드플래시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eSSD는 HDD 대비 부피, 속도, 용량 등 모든 면에서 낫다. 발열과 전력 소모가 적어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솔리다임에 따르면 eSSD를 사용하면 에너지 비용을 HDD 대비 5년간 5분의 1, 총 비용은 46% 줄일 수 있다. 크기가 작아 SSD 1개로 HDD 5개 몫을 한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eSSD 시장은 올해 116억달러에서 2027년 198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eSSD로의 교체를 가로막은 최대 요인이 HDD보다 높은 가격이었는데, 최근 들어 운영 비용까지 고려할 때 HDD보다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양분하는 eSSD

eSSD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1, 2위를 차지하는 분야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세계 eSSD 점유율은 삼성전자 45%, SK하이닉스 32%, 마이크론 10%다. 2020년까지 삼성과 인텔의 양강 구도였으나 SK하이닉스가 고용량 eSSD에 특화한 인텔 낸드 사업부(현재 솔리다임)를 2020년 10월 인수하면서 2위로 뛰었다.

반도체업계는 대용량 쿼드러플레벨셀(QLC) 기반 eSSD에 주목한다. QLC는 낸드 기본 저장 단위인 셀에 4비트를 저장해 데이터 저장량을 대폭 늘린 제품이다. 기존 트리플레벨셀(TLC)에는 셀당 3비트가 저장된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가 앞다퉈 찾는 것도 QLC eSSD다.

SK하이닉스는 고용량 64테라바이트(TB) 제품을 앞세워 빅테크 고객사를 다수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이에 대응해 삼성전자는 업계 최고 용량 eSSD인 128TB 모델 ‘BM1743’을 오는 11월 선보일 계획이다. 업계에선 내년 1분기로 예정된 SK하이닉스의 128TB 출시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온디바이스AI(내장형 AI)도 낸드플래시 부활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퀄컴, 미디어텍 등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는 PC, 스마트폰에 적용되는 온디바이스AI 칩 신제품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정보기술(IT) 기기에 AI 기능이 들어가면 256기가바이트(GB) 이상 고용량 낸드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