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사진=AP)
화석연료 기업들이 외부 보험에 가입하는 대신 자회사 형태의 보험사(캡티브보험)를 직접 설립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각국 정부의 친환경 기조에 발맞춰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보험료를 크게 인상하자, 이들 기업이 최후의 수단으로 캡티브 보험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에 외면당하자보험사 직접 세워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보험사 윌리스타워스왓슨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전 세계 캡티브보험 시장 규모가 2000억달러(약 268조2400억원)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영국 보험사 에이온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약 3000개 기업 중 4분의 1이 캡티브보험을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의 17%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캡티브보험이란 모기업의 위험을 인수하기 위해 자회사 형태로 설립된 보험사를 말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러한 현상이 보험사들이 각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발맞춰 화석연료 기업을 기피하면서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비영리단체 연합 인슈어아워퓨처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46개 보험사가 석탄·석유·가스 기업에 어떤 형태로든 제한을 가하고 있다. 외부 보험사의 높은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화석연료 기업들은 결국 자체적으로 보험사를 설립하는 방법을 택했다.

BHP, 토탈에너지, 에넬, BP, 글렌코어, 쉘 등 주요 화석연료 기업은 모두 외부 보험사를 통하지 않고 자회사를 세워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호주 석탄 생산업체 화이트헤븐도 캡티브보험 도입을 추진 중이다.

존 잉글리쉬 에이온 캡티브보험 부문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통신에 "캡티브보험을 이용하는 화석연료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며 "외부 보험사의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 정책과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을 준수하는 많은 보험사가 화석연료 기업을 외면하고 있다"며 "캡티브보험은 변화하는 규제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 "캡티브보험, 위험성 너무 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캡티브보험이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영국 정유회사 BP는 자회사인 주피터보험을 세우고 손실을 보상받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멕시코만의 마콘도 유정에 설치한 BP의 원유 시추시설이 폭발하면서 근로자 11명이 숨지고 1억7000만갤런의 원유가 바다에 유출됐다.

멕시코만과 인접한 5개 주에서 어업과 관광산업, 해양생태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방제작업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 보험 보상 한도가 7억달러(약 9393억원)였던 캡티브보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BP는 여전히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일각에서는 캡티브보험이 화석연료 기업의 수명을 지나치게 연장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프랑스 환경 비영리단체리 클레임파이낸스의 아리엘 르 부르도넥 활동가는 블룸버그통신에 "캡티브보험 증가는 기후에 나쁜 소식"이라며 "궁극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