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로 들어가고 있다. 강은구 기자
한 시민이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로 들어가고 있다. 강은구 기자
정부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로 높이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을 내놨다. 보험료율 인상 속도는 세대 별로 차등화하고, 국민연금의 국가지급보장도 명문화한다. 재정·인구 여건에 따라 연금액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도 역대 정부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현재 2056년으로 예상되는 기금 고갈 시점을 2088년까지 최대 32년 늦춘다는 계획이다.

○자동조정장치 도입해 연금 인상폭 조절

보건복지부는 4일 ‘2024년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심의·확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지만 단일안 대신 24가지의 시나리오만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후 국회에서 공론화 조사까지 진행하고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결국 1년 만에 정부가 단일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더 내고 더 받는다'…보험료율 9→13%로 인상
정부의 개혁안은 큰 틀에서 보면 ‘더 내고 더 받는 안’이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은 13%로 단계적으로 인상된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 도입 당시 3%였던 보험료율이 1998년 9%로 인상된 이후 26년 만의 보험료 인상이다.

명목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로 상향 조정된다. 명목소득대체율은 은퇴 전 소득 중 연금으로 대체되는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국민연금을 40년 가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연금의 수준을 의미한다. 국민연금 도입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은 1999년 1차 연금개혁으로 60%로 낮아졌고, 2007년 2차 연금개혁을 통해 2028년까지 40%로 단계적으로 낮아지고 있었다. 올해의 소득대체율이 42%다. 예정된 소득대체율 조정을 멈춰 수급자들의 ‘받을 돈’을 높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여기에 장기 기금운용수익률을 현행 4.5%에서 5.5%로 1%포인트 높이는 안을 제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기금운용수익률을 1%포인트 제고할 경우 재정엔 보험료율 2%포인트를 높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규모는 1036조원으로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연평균 5.92%의 수익률을 내고 있다. 현재 58%인 국민연금기금의 위험자산 비중을 65%로 높이고 기금운용 전문인력을 대폭 확대해 현재까지의 누적수익률에 준하는 수준으로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린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이처럼 모수개혁과 기금수익률 개선을 통해 정부는 2056년으로 예고된 기금고갈시점을 2072년까지 16년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여기에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기금고갈시점을 최대 32년까지 늦추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자동조정장치는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상황 등과 연동해 연금액 또는 수급 연령 등을 조정하는 장치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운영 중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따라 연금액을 매년 조정해 실질 가치를 보전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3년 간의 가입자 수 증감률, 기대여명 증감률을 조정률로 반영해 연금액 인상률을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전년도 물가 상승률이 2%라면 그만큼의 연금액이 인상되지만, 가입자 수가 0.5% 감소, 기대여명이 0.5% 상승할 경우 1%를 조정률로 적용해 연금액 인상률이 1%로 낮아질 수 있는 셈이다.

자동안정장치의 재정안정효과는 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는 2036년부터 발동 시 기금고갈 시점을 2088년으로 32년 늘릴 정도로 강력하다. 모수개혁을 통한 기금고갈 연장 기간인 16년의 2배에 달한다. 수급자의 연금액 인상폭을 조절하는 자동안정장치 도입은 역대 정부 처음으로 이뤄지는 시도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금액이 깎이는 것이 아니라 재정 등 경제 여건을 감안해 인상폭이 조절되는 것”이라며 “소득 보장 수준의 변화를 고려해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20~50대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

세대간 형평성 제고를 위해 20~50대 세대별로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차등화 시킨 것도 이번 정부안의 특징이다. 복지부는 4%포인트의 보험료율 인상분을 50대는 4년 간 1%포인트, 40대는 8년 간 0.5%포인트, 30대는 0.33%씩 12년, 20대는 0.25%씩 16년씩 높이는 안을 제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젊은 층일수록 납입 기간이 길게 남아 있고 보험료 부담은 높다”며 “세대 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더 내고 더 받는다'…보험료율 9→13%로 인상
복지부 분석에 따르면 이번 개혁안에 따라 보험료율은 13%, 소득대체율은 42%로 인상된다고 가정했을 때 생애 평균 보험료율은 50대는 9.6%, 20대는 12.9%로 차이가 있다. 50대가 보험료율이 빠르게 오르긴 하지만, 보험료를 낼 잔여 납입기간이 10년 이하로 최대 40년 가량이 남은 20대에 비해 짧기 때문이다. 과거 두 차례의 소득대체율 인하(70→40%)로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현재 50세인 1975년생의 생애 평균 소득대체율은 50.6%, 20세인 2005년생은 42%로 차이가 크다. 청년 세대에 비해 중장년층이 ‘덜 내고 더 받는’ 구조인 셈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지급보장도 법에 명문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제시한 모수개혁과 자동안정장치 등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혁이 이뤄지는 것이 전제다.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외에도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도 담겼다. 먼저 현재는 둘째 아이부터 적용되는 출산 크레딧을 첫째 아이부터 인정해주기로 했다. 지금은 6개월만이 인정되는 군 크레디소 18~21개월인 군 복무 기간에 맞춰 확대된다.

현재는 59세인 의무가입연령도 64세까지 상향하는 안도 추진한다. 2033년이면 65세가 되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감안하면 소득이 있을 경우 연금 수급 직전까지 국민연금을 납부해 가입 기간을 늘리고, 그만큼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65세 이상 경제활동 참가율이 2013년 31.2%에서 2023년 38.3%로 높아지는 등 고령층 노동이 확대되고 있다”며 “다만 고령자 고용 여건 개선과 병행해 장기적으로 논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연금개혁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하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정부가 마련한 개혁안의 핵심은 모든 세대가 제도의 혜택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국회가 조속히 연금특위 등 논의구조를 마련해 개혁을 마무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