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유령들과 저승… 팀 버튼에 또 다시 탄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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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Beetlejuice Beetlejuice)' 리뷰
역대급 환타지 호러 열차
역대급 환타지 호러 열차
1988년에 개봉한 <비틀쥬스>는 데뷔작이었던 <피위의 대모험> (1985) 에 이은 팀 버튼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해괴한 외모를 가진 유령들과 그들의 팝 아트적인 은신처로 중무장한 호러 코미디, <비틀쥬스>는 장르 영화의 팬들에게는 ‘종교’가 되었고, 이 작품을 연출한 팀 버튼은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작가 감독으로 자리 잡게 된다.
유령을 보는 능력을 가진 ‘리디아’와 그녀를 쫓는 악령, ‘비틀쥬스’의 이야기를 그리는 <비틀쥬스>는 이후, 무려 36년이 지난 올해 같은 창작자와 캐스트를 거느리고 더욱더 기괴하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바로 비틀쥬스의 두 번째 이야기, <비틀쥬스 비틀쥬스>로 말이다. 유령과 대화하는 능력으로 토크쇼의 호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리디아’(위노나 라이더). 리디아의 10대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는 그런 엄마가 부끄럽기만 하다. 엄마와 딸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던 어느 날, 할아버지 ‘찰스’가 상어에 잡아먹혀 사망한다. 가족들은 장례를 위해 그들의 고향 ‘윈터리버’로 향한다.
엄마를 최대한 피하고 싶은 ‘아스트리드’는 방황하던 중 악령이 된 연쇄살인마의 함정에 빠져 저세상 (beyond world)에 발을 들이게 되고 딸을 구하기 위해 ‘리디아’는 저세상 슈퍼스타 ‘비틀쥬스’ (마이클 키튼) 를 소환한다. 비틀쥬스는 악령을 추적해 딸을 구하는 것을 돕는 대신 리디아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비틀쥬스 역시 그에게 살해당한 전처이자 막강한 악령, ‘들로레스’ (모니카 벨루치)와 복수혈전을 벌이는 중이다.
▶▶▶ [관련 칼럼] 신이여 감사합니다, 뇌쇄의 모니카 벨루치를 내리셨나이다 전작이 그랬듯, <비틀쥬스 비틀쥬스>에는 1970, 80년대 대중문화의 레퍼런스와 문화적 코드가 가득하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아스트리드가 타게 되는 열차 – 죽은 사람들을 ‘저세상’으로 실어 나르는 ‘소울 트레인’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음악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흑인 시청자를 대상으로 했던 이 프로그램 (AFKN으로도 한국에 방영되었다) 은 주로 R&B 나 디스코 장르의 음악과 춤이 주류를 이루었다. 영화에서 ‘소울 트레인’이 등장할 때면 느닷없이 흑인 유령들이 나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분위기와 세팅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의 가장 큰 동력인 코미디, 즉 영화 속 농담과 코믹한 대사들 역시 문화적인 이해가 없다면 즐기지 못할 순간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남편 로리와 임신 중인 리디아가 데이트하던 중 아스트리드를 출산하게 되는 장소는 ‘마리오 바바 (이태리 고어 호러 장르인 ‘지알로, giallo’ 장르의 거장) 호러 영화제’다 (개봉 버전 영화의 자막은 ‘호러 영화제’로 의역되어 있다).
그녀는 바바의 작품, <킬 베이비 킬>(1966) 을 보는 중 양수가 터졌다는 이야기를 아스트리드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들려준다. 이는 분명 영화의 제목을 역설적으로 이용한 ‘조크’지만 마리오 바바라는 인물과 그의 영화적 특징을 알지 못했다면 심심한 클리쉐 정도로 비칠 대목일 것이다. 그런데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낮지 않은 문화적 수위에도, <비틀쥬스 비틀쥬스>에는 즐기기에 충분한, 혹은 그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매력이 산재하다는 것이다. 다수의 sci-fi(과학영화)나 호러 영화에서 등장했던 괴물, 유령, 기형체를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유령들과 망령 그리고 저승의 구현은 노장, 팀 버튼의 영화적 상상력과 스태미나에 다시 한번 탄복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요소들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키튼과 위노나 라이더의 (36년 만의) 재회는 <비틀쥬스>를 영화가 아닌 전설로 남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들이 재현하는 비틀쥬스와 리디아는 여전히, 혹은 더더욱 진일보한 기괴함과 우아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작 <비틀쥬스>가 이들의 활약에 유명세와 명성으로 보답했다면 후속작인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영예와 유산을 남겨줄 것이다. 이제 ‘비틀쥬스’의 다음 장은 이 영화를 오랜 시간 동안 지켜봤던 동 세대 관객들, 그리고 이 전설에 동참할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 의해 완성될 차례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유령을 보는 능력을 가진 ‘리디아’와 그녀를 쫓는 악령, ‘비틀쥬스’의 이야기를 그리는 <비틀쥬스>는 이후, 무려 36년이 지난 올해 같은 창작자와 캐스트를 거느리고 더욱더 기괴하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바로 비틀쥬스의 두 번째 이야기, <비틀쥬스 비틀쥬스>로 말이다. 유령과 대화하는 능력으로 토크쇼의 호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리디아’(위노나 라이더). 리디아의 10대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는 그런 엄마가 부끄럽기만 하다. 엄마와 딸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던 어느 날, 할아버지 ‘찰스’가 상어에 잡아먹혀 사망한다. 가족들은 장례를 위해 그들의 고향 ‘윈터리버’로 향한다.
엄마를 최대한 피하고 싶은 ‘아스트리드’는 방황하던 중 악령이 된 연쇄살인마의 함정에 빠져 저세상 (beyond world)에 발을 들이게 되고 딸을 구하기 위해 ‘리디아’는 저세상 슈퍼스타 ‘비틀쥬스’ (마이클 키튼) 를 소환한다. 비틀쥬스는 악령을 추적해 딸을 구하는 것을 돕는 대신 리디아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비틀쥬스 역시 그에게 살해당한 전처이자 막강한 악령, ‘들로레스’ (모니카 벨루치)와 복수혈전을 벌이는 중이다.
▶▶▶ [관련 칼럼] 신이여 감사합니다, 뇌쇄의 모니카 벨루치를 내리셨나이다 전작이 그랬듯, <비틀쥬스 비틀쥬스>에는 1970, 80년대 대중문화의 레퍼런스와 문화적 코드가 가득하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아스트리드가 타게 되는 열차 – 죽은 사람들을 ‘저세상’으로 실어 나르는 ‘소울 트레인’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음악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흑인 시청자를 대상으로 했던 이 프로그램 (AFKN으로도 한국에 방영되었다) 은 주로 R&B 나 디스코 장르의 음악과 춤이 주류를 이루었다. 영화에서 ‘소울 트레인’이 등장할 때면 느닷없이 흑인 유령들이 나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분위기와 세팅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의 가장 큰 동력인 코미디, 즉 영화 속 농담과 코믹한 대사들 역시 문화적인 이해가 없다면 즐기지 못할 순간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남편 로리와 임신 중인 리디아가 데이트하던 중 아스트리드를 출산하게 되는 장소는 ‘마리오 바바 (이태리 고어 호러 장르인 ‘지알로, giallo’ 장르의 거장) 호러 영화제’다 (개봉 버전 영화의 자막은 ‘호러 영화제’로 의역되어 있다).
그녀는 바바의 작품, <킬 베이비 킬>(1966) 을 보는 중 양수가 터졌다는 이야기를 아스트리드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들려준다. 이는 분명 영화의 제목을 역설적으로 이용한 ‘조크’지만 마리오 바바라는 인물과 그의 영화적 특징을 알지 못했다면 심심한 클리쉐 정도로 비칠 대목일 것이다. 그런데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낮지 않은 문화적 수위에도, <비틀쥬스 비틀쥬스>에는 즐기기에 충분한, 혹은 그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매력이 산재하다는 것이다. 다수의 sci-fi(과학영화)나 호러 영화에서 등장했던 괴물, 유령, 기형체를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유령들과 망령 그리고 저승의 구현은 노장, 팀 버튼의 영화적 상상력과 스태미나에 다시 한번 탄복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요소들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키튼과 위노나 라이더의 (36년 만의) 재회는 <비틀쥬스>를 영화가 아닌 전설로 남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들이 재현하는 비틀쥬스와 리디아는 여전히, 혹은 더더욱 진일보한 기괴함과 우아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작 <비틀쥬스>가 이들의 활약에 유명세와 명성으로 보답했다면 후속작인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영예와 유산을 남겨줄 것이다. 이제 ‘비틀쥬스’의 다음 장은 이 영화를 오랜 시간 동안 지켜봤던 동 세대 관객들, 그리고 이 전설에 동참할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 의해 완성될 차례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