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 매달려 있는 이병호 작가의 '인체 측정'. / 사진제공. 예술경영지원센터
지붕에 매달려 있는 이병호 작가의 '인체 측정'. / 사진제공.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과 맞물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전시 이벤트가 이뤄지는 가운데 고궁과 한옥이 핵심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의 헤리티지를 접해보고 싶은 해외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들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유서 깊은 궁궐과 한옥 속에 한국 동시대 미술 작품들이 늘어선 모습은 외국인들은 물론 한국인들에게도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유적지를 활용한 전시는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대한제국 황실 가족들이 살았던 창덕궁 낙선재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국 미술시장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꼽히는 40대 작가 우국원의 작품이 걸렸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한국 현대 작가의 작품 80여 점을 선보이는 ‘K-헤리티지 아트전’을 열면서다. ‘이음의 결’이라는 부제처럼 낙선재를 과거와 현재의 한국 예술이 공존하는 장(場) 동시에 전통 동양화와 서양 현대미술이 교차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현대미술 섹션에는 우국원을 비롯해 곽훈, 김선두, 남춘모, 이상원 등의 작품이 나왔다. 전시는 8일까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K-헤리티지 아트전(Korean Heritage Art Exhibition)'을 찾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임형택 기자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K-헤리티지 아트전(Korean Heritage Art Exhibition)'을 찾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임형택 기자
서울 사직동에 자리 잡은 운경고택에선 지난 3일부터 이완 개인전 ‘랜덤 액세스 메모리 3: 기록과 기억’이 열리고 있다.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후손이자 국회의장을 지낸 운경 이재형(1914~1992)이 살았던 장소에 201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며 해외 미술계에서도 잘 알려진 이완의 최신작을 선보이는 것. 21세기 데이터 축적 기술이 가져온 인간과 삶의 변화에 주목한 작품들이 20세기 한국 현대사 격동기를 거친 인물의 손때가 묻은 공간에 전시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는 다음 달 27일까지 이어진다.

민속문화재 14호인 서울 가회동 휘겸재엔 한국 미술을 이끌어갈 유망한 신진작가들의 작품이 걸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진행하는 ‘전속작가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열린 ‘다이얼로그: 경계인간’ 전시다. 7명의 유망 작가가 선보인 회화, 조각, 설치작품 50여 점이 나왔다. 고택 정원이 보이는 중앙홀 들보에 걸린 이병호 작가의 형형색색 조각, 조선시대 책가도(冊架圖)를 요즘 어법으로 재해석한 오제성 작가의 ‘INDEX#3_다보각경도’ 등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맥락화한 전시라 흥미롭다.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K-헤리티지 아트전(Korean Heritage Art Exhibition)'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임형택 기자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K-헤리티지 아트전(Korean Heritage Art Exhibition)'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임형택 기자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미술작품으로도 해외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에 익숙해지면서 전통 문화유산이나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단 점에서 정부 기관들도 ‘한옥 갤러리’를 적극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경복궁 근정전에서 패션쇼를 여는 등 고궁이나 고택은 한국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21세기 거장으로 꼽히는 니콜라스 파티가 지난달 31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에서 국보인 청자 주전자를 그려 넣은 ‘청자가 있는 초상’ 등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궁궐과 한옥 고택에서 이뤄지는 전시들은 모두 외국인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낙선재와 운경고택, 휘겸재가 위치한 지역이 인기 관광지이자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 기관이 운집한 ‘미술 1번지’란 점에서 일대를 구경하다 한옥과 현대미술 조화에 이끌려 들어온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외국인은 “한국에서 본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