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오세훈의 아레나, 김동연의 아레나
K팝이 세계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던 2010년대 중반 국내에서도 아레나(대형 공연장)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K팝 산업 발전, 관광 인프라 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 ‘1석 3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경기도와 서울시가 뛰어들었다. 경기도는 2016년 CJ ENM을, 서울시는 2018년 카카오를 아레나 건설 및 운영을 담당할 민자 사업자로 선정했다. 그런데 지난 7월 초 경기도는 일산에 ‘CJ라이브시티’를 건설하기 위해 CJ ENM과 맺었던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했고, 서울시는 창동에 들어설 ‘서울 아레나’ 착공식을 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전담팀까지 만들어 지원

서울 아레나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정치적 승부수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기 집권여당의 잠룡 중 한 명이었지만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강북 균형 개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동에 서울 아레나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자 ‘박원순표 서울 아레나’ 사업은 추진 동력을 잃을 것으로 예상됐다. 대형 공연장은 수익을 내기 쉽지 않아 자칫 ‘제2의 세빛둥둥섬’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오 시장은 그러나 2022년 4월 카카오와 서울 아레나 건설을 위한 협약을 맺었고, 서울시 산하에 사업을 지원하는 전담팀도 만들었다. 서울시 권역별로 문화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는 비전까지 제시했다. 경쟁 정당 전임자가 시작한 대형 사업을 자신의 사업으로 끌어안은 것이다.

CJ라이브시티 사업 추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CJ ENM은 2016년 라이브시티 사업자로 선정된 직후 경기도의회의 행정사무조사를 받았다. 야당 의원들이 특혜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인데, 최종 무혐의로 종료됐다. 이 과정에서 11개월의 시간이 허비됐다. 그 이후에도 변경된 사업계획을 승인받는 과정에서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행정주체가 경기도와 고양시로 이원화된 데 따른 것이었다.

배임 논란 발목 잡힌 라이브시티

지지부진하던 라이브시티 건설 사업에 추진 동력을 불어넣은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그는 경기지사 시절인 2019년 창릉신도시 지정으로 일산 주민들의 반(反)민주당 정서가 확산하자 CJ ENM과의 협의를 통해 라이브시티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다. 당시엔 올해 6월 완공이 목표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부지 내 한류천 수질개선 공공 사업 지연, 한국전력의 해당 지역 대규모 전력공급 불가 통보 등으로 작년 3월 공사가 멈춰 섰다. 모두 사업자가 통제하기 힘든 불가항력적인 외부 변수였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작년 말 민관합동 건설투자사업 조정위원회를 열어 경기도 측에 CJ라이브시티 사업의 유동성 확보 방안을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CJ ENM도 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을 감면해줄 것을 경기도에 요청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그러나 “배임이 될 수 있다”며 거부했다. 이로써 일산을 한류의 전진기지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려던 계획은 일단 무산됐다. 아레나 건설 사업과 관련해 위험을 감수한 오 시장과 위험을 회피한 김 지사, 누구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