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수영장 크기의 설치작품 ‘The Amorepacific Fool’.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실제 수영장 크기의 설치작품 ‘The Amorepacific Fool’.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서울 용산의 거대한 빌딩 지하에 커다란 수영장이 들어섰다. 그런데 수영장 안에 물은 없고 사람 모양의 흰 조각만 두 개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수영장에서 나가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거실과 주방, 침실, 화장실이 있는 140㎡ 면적의 세련된 집이 나온다. 집 안에도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예컨대 시든 꽃다발이 놓인 현관의 거울에는 ‘다시는 보지 말자’라고 적혀 있고, 집 안에 있는 쓸쓸한 표정의 소년 조각은 창에 입김을 불어 ‘I’(나)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북유럽 2인조 설치 작가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동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기묘한 풍경이다.
'Shadow House' 외관.
'Shadow House' 외관.
바깥에서 본 'Shadow House'의 내부.
바깥에서 본 'Shadow House'의 내부.
1995년 마이클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이 결성한 엘름그린&드라그셋은 세계적인 설치 작가다. 조각과 디자인, 건축과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2009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특별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여럿 받았다. 2012년 영국 런던 트래펄가광장에 설치한 공공 조형물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주요 장소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작품의 공통적인 주제는 “지금 당신이 믿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를 위해 엘름그린&드라그셋은 미술관을 미술관 같지 않게 꾸미고, 그 속에 ‘작품처럼 보이지 않는’ 작품을 설치해 관객의 상식을 뒤집는다.
엘름그린&드라그셋.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엘름그린&드라그셋.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전시장 입구에 작품 'What's left'가 매달려 있다.
전시장 입구에 작품 'What's left'가 매달려 있다.
아리송한 설명이지만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 뜻을 바로 체감할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 있는 위태롭게 줄에 매달려 있는 듯한 남성 조각 작품 ‘What’s Left’부터 당혹스럽다. 레스토랑을 본뜬 공간을 만들고 영상 통화를 하는 실제 같은 여성 인형을 배치한 ‘구름(The Cloud)’, 산업용 주방과 실험실을 결합한 공간인 ‘Untitled(the kitchen)’, 140㎡ 규모 집을 외관부터 안쪽까지 실제처럼 꾸민 ‘Shadow House’, 물이 빠진 수영장 ‘The Amorepacific Pool’ 등 하나하나가 압도적인 규모의 설치작업이다.

명확한 메시지와 감동을 기대하고 전시장을 방문하면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를 보는 관객은 대본을 받지 못한 채 촬영장에 도착한 주연 배우의 기분을 느끼게 된다”고 표현한 큐레이터(마리안 토르프)도 있다. 이는 작가들이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엘름그린은 “전시품 사이를 돌아다니며 관객이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바라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The Cloud'. 의자에 앉아있는 건 얼핏 보면 실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각 작품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The Cloud'. 의자에 앉아있는 건 얼핏 보면 실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각 작품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영상통화중인 것처럼 꾸민 화면에서는 실제 사람(배우)의 얼굴과 목소리가 나온다.
영상통화중인 것처럼 꾸민 화면에서는 실제 사람(배우)의 얼굴과 목소리가 나온다.
보고 경험하고 사진 찍는 즐거움은 확실하다. 막대한 제작비와 운송비, 설치 비용이 들어간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전시다. 작품의 규모와 화려함만 따지면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열려 화제가 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이상이다. 그만큼 관람료 부담은 적지 않다. 성인 1만8000원, 학생 1만4000원.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