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간판 정책인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사업에 중앙정부의 재정 투입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고, 정부 고유 권한인 예산 편성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는 법안이다. 국민의힘이 “현금 살포 의무화법” “이재명 하명법”이라며 법안 처리에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지역화폐 재정투입 의무화' 밀어붙이는 野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5일 전체회의를 열어 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민주당 소속 신정훈 행안위원장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거수 표결로 일방 처리했다.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르면 오는 26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로 6일 열릴 예정이었던 여야 정책위원회 의장 회동은 전격 취소됐다.

지역화폐는 중앙정부가 아닌 각 지방자치단체가 정해진 가맹점에서 사용하도록 자체 발행하는 일종의 ‘할인 상품권’이다.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91곳이 발행하고 있다. 이 대표가 지자체장 시절 역점을 두고 추진해 ‘이재명표 사업’으로도 불린다. 이에 민주당은 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해왔다. 현행법은 중앙정부가 지역화폐 발행·판매 등에 드는 각종 부대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개정안은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개정안에 대해 “지역 골목상권을 살리는 민생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정현 민주당 의원은 “지방 재정이 어려우니 국가가 투자해서 어려운 지방정부 재정을 보완하고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라고 했다.

정부·여당은 여러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우선 재정 부담이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지역화폐 20조9000억원어치를 발행하는 데 3522억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한 해 전에는 7050억원이 들어갔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다며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지만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살아났다. 민주당이 집중 요구하면서다. 국민의힘 행안위 간사인 조은희 의원은 “현금 살포를 의무화하는 악법 중 악법”이라고 했다.

지자체 사업에 중앙정부의 재정 투입을 의무화한다는 점에서 지방자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자체 자체 사업은 해당 지자체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에 배치된다”고 했다. 지자체별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재정 여건이 좋은 지자체가 발행을 더 늘리고, 이에 따라 해당 지자체에 중앙정부 지원이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역사랑’이 아니라 ‘지역 차별’ 상품권”이라고 했다.

경제적 효과를 놓고도 논란이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 도입으로 기대하는 지역 내 소매업 매출 증가는 인접 지자체의 매출 감소를 대가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20년 지역화폐 발행으로 2260억원의 경제적 순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 발행에 나서면서 기대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대신 발행비용 증가, 소비자 후생 손실 같은 비효율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