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봉크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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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마리 유기견들이 '한번에 대성공'…기네스 신기록 '대박' [현장+]
"첫 시도가 시작되면, 트레이너와 관람객들은 산책로 안쪽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도전자 전방으로 5m 바깥에서 촬영해주세요. 도전은 3번까지 가능하고요. 산책이 끝났을 때 모든 강아지의 건강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최종 성공 여부를 판단하겠습니다."

5일 오후 5시께 충북 괴산군 중원대학교 골프장. 현장으로 초청받은 영국 기네스 본사 소속 심판관이 '한번에 가장 많은 개들과 산책한 사람' 부문 기네스 세계 기록 도전 과정과 규칙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40여마리의 유기견들과 관계자 4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이 내용을 경청했다.

이번 행사는 유기견 입양 독려를 위해 개최됐다. 기네스북 등재에 도전한 참가자는 블록체인 기반 밈코인 기업 '봉크'(Bonk) 운영자 놈(Nom)이다. 유기동물 구조 단체 KK9R·유엄빠·코리안 독스, 이평우 훈련사, 동물 의료단체 등 관계자가 이번 도전을 위해 2주간 함께 준비했다.

기네스 세계 신기록 이렇게 깬다

38마리 유기견들이 '한번에 대성공'…기네스 신기록 '대박' [현장+]
산책로 점검, 유기견들의 건강 상태 확인 후 도전자 놈이 38마리의 개들과 함께 출발선 앞에 섰다. 놈을 기준으로 좌우에 19마리씩 미리 지정된 위치에 개들이 밀착해 섰다. 반항하는 개 없이 모두 본인의 자리를 아는 듯 편안하게 서 있었다.

그룹과 위치를 나눈 기준도 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놈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활발한 성격의 유기견들이 자리했다. 산책로 구조상 대부분 왼쪽으로 코너링을 하기 때문에, 앞서 나가고 싶어 하는 개들을 좌측에 배치했다는 설명이다.

5시20분께 시작된 산책은 20여분간 계속됐다. 도전자의 보폭과 구령에 맞춰 개들이 휴식없이 이동해야 한다. 도전자가 개들에게 끌리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 안된다. 도전에 참가한 개들이 심하게 짓거나, 멈추거나, 달리는 등 독단적인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
38마리 유기견들이 '한번에 대성공'…기네스 신기록 '대박' [현장+]

산책 후반부에 이르자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켜보던 관계자들도 응원의 목소리를 줄이고 유기견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지켜봤다.

5시40분께 놈과 38마리의 유기견이 종점에 도착했다. 첫 시도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관계자들은 탄성을 터트렸고, 달려와 개들과 얼싸안기도 했다. 몇몇 관계자들은 개들을 기특해하며 글썽이기도 했다.
도전을 마치고 유기견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기네스북 심판관. /사진=김영리 기자
도전을 마치고 유기견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기네스북 심판관. /사진=김영리 기자
축하도 잠시, 심판관의 지시에 맞춰 의료진이 개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38마리 모두 부상 없이 건강히 완주한 것을 확인한 뒤 대형을 맞춰 걷느라 힘들었을 개들을 편안하게 조별로 풀어줬다.

이로써 38마리의 강아지가 기네스북 기록 도전자 놈과 함께 1.04km의 산책에 성공했고, 6년 만에 36마리의 강아지와 0.96km의 산책에 성공했던 호주 마리아 하르만의 기록을 경신했다.

2주간 연습·시도 직전 2마리 이탈도

/사진=김영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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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유기견 입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동물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중원대학교 골프장 잔디밭은 놈과 개들에게 모두 처음이었다. 세계 신기록을 깨는 정식 시도에 앞서, 이들에게 주어진 연습 시간은 1시간뿐이었다. 유기견 선수들이 속속 도착해 골프장을 직접 밟아보고 그룹으로 나뉘어 연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작 직전까지 40마리·1.4km 산책을 목표로 훈련을 진행했으나, 연습 과정에서 의료진의 소견에 따라 38마리만 도전에 참가했다. 잔디 문제로 중간에 움푹 팬 곳이 있어 개들의 부상이 우려돼 산책로도 1.04km로 일부 줄여 도전을 잇게 됐다.
/사진=김영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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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발탁된 유기견들은 경기도 김포시 소재 이평우 전문 훈련사의 센터에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다. 관계자는 유기견들이 둔감화 교육, 사회화 교육 등의 집중 훈련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놈도 지난주 일요일부터 매일 3~4시간씩 유기견들과 함께 어울리며 서로 얼굴을 익히고 호흡을 맞췄다.

이평우 훈련사는 현장에서 "한번에 성공한 건 진짜 대박"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개들이 모여서 같은 목표로 움직이는 게 정말 어렵다"며 "처음에는 3마리씩 붙어 다니게 하다가, 5마리, 7마리, 10마리 이렇게 점점 늘려가는 식으로 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육과정에서 개들이 더위에 힘들어했는데 마침 오늘 날씨도 흐리다. 하늘이 도왔다"며 웃었다.

"'유기견이라' 성공했다"

/사진=김영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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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전에 참가한 유기견들은 모두 위기의 상황에서 구조된 개들이다.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개들은 △임시보호소에서 안락사가 임박한 경우 △애니멀 호더(지나치게 많은 개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키우는 동물 학대의 일종)에 의해 키워진 경우 △식용 개 농장에서 길러진 경우 △펫샵 개 농장에서 학대받던 모견 등 다들 상처를 갖고 있었다.

도전에 성공하는 순간 눈물을 훔치던 김현유 KK9R 대표는 "우리 애들이라 성공했다. 이 친구들은 이제 '월드 챔피언 독'이다"라며 기뻐하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틴 친구들이라 다들 강인하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동물 구호 단체인 코리안독스의 김복희 대표도 "'유기견들은 사회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면서 "이번 훈련과정과 도전으로 유기견에 대한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박민희 유엄빠 대표도 "이번 도전은 유기견 아이들이라서 해낸 것"이라며 "한국은 아직 품종견이나 어린 강아지 입양을 선호하기 때문에 사실 오늘 도전에 참가한 친구들은 '한국 입양 시스템에서 외면받은 친구들'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캠페인으로 38마리의 개들이 모두 입양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현실적으로 해외 입양이 더 적극적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기네스북 심판관과 놈, 이평우 훈련사. 이 훈련사에게 안겨 있는 강아지는 도전 준비 기간 사이에 구조된 유기견으로 이름이 '봉크'다. /사진=김영리 기자
(왼쪽부터)기네스북 심판관과 놈, 이평우 훈련사. 이 훈련사에게 안겨 있는 강아지는 도전 준비 기간 사이에 구조된 유기견으로 이름이 '봉크'다. /사진=김영리 기자
38마리 유기견들이 '한번에 대성공'…기네스 신기록 '대박' [현장+]
한편 이번 행사를 준비한 '봉크'(Bonk)는 솔라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둔 밈(Meme) 코인 프로젝트다. 이번 도전의 성공으로 봉크는 KK9R에게 5만달러(약 6649만원)을 기부할 예정이다. 기부금은 유기견들의 국내외 입양 과정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동물 구조 단체의 노후화 시설 보수에도 쓰인다.

이번 기네스북 기록 도전자로 나선 봉크의 핵심 운영자 놈(Nom)은 한경닷컴에 "가상자산이 기업이 단순히 추상적인 프로젝트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 봉크의 목표"라면서 "생활에 밀접한 다양한 활동으로 한국 시장에 접근하고 싶다"고 밝혔다.

괴산=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