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시리즈 앞 매대에서 물건을 고르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김영리 기자
한글 시리즈 앞 매대에서 물건을 고르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김영리 기자
"지하상가에서 한글이 새겨진 머그컵을 1만원에 샀는데, 여긴 텀블러가 5000원이네요. 여길 먼저 왔어야 했네요."

4일 오후 다이소 명동본점에서 만난 미국인 관광객 로렌(26) 씨는 이같이 말하며 매대에 있는 한글 문양 텀블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는 "다이소는 화장품으로 유명한 줄 알았는데 직접 방문해보니 저렴한 전통 기념품이 많아서 친구들에게 선물할 전통 봉투와 우산, 쇼핑백을 샀다"고 말했다.

미리 제품을 알아보고 매장에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도 있었다. 민화 그림이 새겨진 소주잔과 한글 패턴의 에코백을 구매했다는 유키(32) 씨는 "사실 다이소 인스타그램을 보고 한글 파우치와 부채, 자개 스티커도 사고 싶었다"면서 "명동역점에도 없길래 (명동본점으로) 왔더니 여기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다이소 한글 시리즈 상품에 관심 갖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김영리 기자
다이소 한글 시리즈 상품에 관심 갖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김영리 기자
지난달 30일 출시한 다이소 '한글 시리즈'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내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반응이 더 좋은 상황이다. 1000원짜리 자개 스티커, 2000원 상당의 민화 문진, 한글 파우치 등은 일부 매장에서 이미 동났다. 한글 패턴의 에코백(3000원), 텀블러(5000원), 민화 우산(5000원), 키링(1000원) 등 잡화도 매장에서 인기였다.

다이소 명동역점 1층 안쪽 한글 시리즈 제품 매대 역시 관광객의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매장에서 만난 50대 문모 씨는 "미국에 거주하는데 잠시 한국에 들렀다"면서 "돌아가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댕기 머리띠, 머리핀, 전통 봉투와 한글 쇼핑백, 자개 상자를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이소 전통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숙소인 용산부터 시작해서 이태원, 명동 매장까지 계속 들러보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실제로 많이 사가더라. 지하상가나 길거리 선물 가게보다 훨씬 저렴하고 디자인도 더 예쁘다"고 호평했다.

출시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됐으나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명동점에서 외국인들이 다들 자개 스티커 몇장씩 집어 가더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40개 남았다고 뜨길래 갔는데 없었다", "부채, 자개 상자 사고 싶은데 동네에 없다" 등 누리꾼들의 후기와 목격담이 속출했다.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던 자개 스티커는 서울역, 명동, 홍대 일대 매장서 전부 품절이라 실물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다이소 관계자에 따르면 '한글 시리즈'는 출시 이후 3일 만에 준비한 물량의 50%가 소진됐다. 다이소가 통상 계절별로 출시하는 시리즈 제품군에 비해서도 판매 속도가 빠른 편이라는 설명이다. 관계자 측은 "이번 한글 시리즈는 특히 명동 등 외국인이 많이 오는 상권에서 판매가 잘 되고 있다"고 전했다.

"알뜰 여행객 많다"

4일 문 씨가 구매할 다이소의 전통 문화 관련 제품을 기자에게 보여주는 모습. 그는 거주지인 미국으로 돌아가 지인들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김영리 기자
4일 문 씨가 구매할 다이소의 전통 문화 관련 제품을 기자에게 보여주는 모습. 그는 거주지인 미국으로 돌아가 지인들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김영리 기자
다이소가 출시한 한글 시리즈 제품들이 유독 방한 외국인에게 사랑받는 이유로는 단연 '가성비'가 꼽힌다. 과거 면세점 쇼핑을 즐기던 중국인 큰손 관광객 '유커'에 의존하던 관광 산업이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국적의 개별 관광객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저가 상품이 더욱 주목받게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명동 일대에서 다이소 전통 기념품과 지하상가 기념품의 가격을 비교해보니 다이소가 가격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지하상가에서 한글 패턴이 새겨진 컵은 1만원 이상으로 다이소의 한글 텀블러보다 2배 이상 비쌌다. 손톱깎이 세트도 다이소는 3000원, 지하상가는 8000~1만원대였다. 자석 등 잡화는 지하상가에서 4개에 1만1000~1만4000원대에 묶음 판매하고 있었다. 다이소에서 자석을 구매할 수는 없었지만 문진이나 키링 등 작은 부피로 선물하기 좋은 기념품들이 대부분 개당 1000~3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다이소가 '가성비 기념품 상점'으로 알려지면서 해외 카드 매출도 증가하는 추세다. 다이소에 따르면 2분기(4~6월) 전체 매장에서 발생한 해외 카드 매출, 결제 건수는 각각 지난해 동기 대비 48%, 42% 증가했다. 외국인 고객 비중이 큰 명동역점과 명동본점만 집계해봐도 같은 기간 매출이 각각 지난해보다 67%, 64% 늘어 외국인 관광객에 따른 매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동 지하상가의 한 기념품 가게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명동 지하상가의 한 기념품 가게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외국인 관광객들도 알뜰 여행을 하려는 수요가 높다"면서 "우리나라도 물가가 높아 1~2달러로 살 수 있는 기념품이 많지 않아 다이소가 주목받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특히 지인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구매하는 잡화 기념품의 경우 품질보다는 가격 요인이 구매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특성도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전통 기념품의 인기 요인으로 "한류 콘텐츠를 시작으로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가 좋아졌고, 이에 외국인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외래관광객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1위는 32.1%가 꼽은 '케이팝 등 한류 콘텐츠'였으나, 1%포인트(P)의 근소한 차이로 '한국 전통문화'가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한류 인기를 디딤돌 삼아 전통문화 산업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노력까지 병행한다면 국내 관광 산업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