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션 스컬리.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션 스컬리.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가지 영역만을 파고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눈앞의 결과나 세상의 유혹에 눈을 돌리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탐구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 용산구 타데우스로팍서울에서는 반세기가 넘도록 자신의 ‘그림 세계’에만 몰두한 작가가 관객을 만나고 있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서울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이는 추상화가 션 스컬리다. 그가 개인전 '소울'을 열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늘어놓는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스컬리는 1945년생으로, 현재는 영국에 작업실을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가로와 세로를 가로지르는 선, 투박한 블록을 사용해 추상화를 그리는 작가다.

스컬리는 ‘거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으로 이주해서는 슬럼가에 살며 깨진 물탱크, 탄약 등 전쟁의 잔해를 놀잇감 삼아 자랐다. 이주하기 전 아일랜드에선 가족과 함께 노숙을 했다.

션 스컬리, 랜드라인 드리프팅(Landline Drifting), 2024
션 스컬리, 랜드라인 드리프팅(Landline Drifting), 2024
15살땐 학교를 그만둔 후 제지 공장으로 가 생업에 뛰어들었다. 일하며 다닌 야간학교에서 미술을 처음 접한 스컬리는 내셔널갤러리에서 그림을 보며 구상화가를 꿈꿨다. 하지만 우연히 스컬리의 작업을 본 당시 교수가 “너의 재능은 구상이 아닌 색채”라고 평가했다. 그때부터 그는 색채를 사용한 추상 실험을 시작했다.

색채는 지금까지도 그의 작업을 지탱하는 거대한 정체성이다. 스컬리는 작업을 할 때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색을 쓰지 않는다. 작품을 그리며 그 안에서 물감을 혼합하고 바르며 '스컬리표' 색채를 창조한다.

"내가 회화에 씀으로서 새로운 색조가 탄생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야만 세상을 놀래킬 우수한 회화가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션 스컬리,월 런던 그린(Wall London Green), 2024
션 스컬리,월 런던 그린(Wall London Green), 2024
이번 전시에는 션 스컬리를 대표하는 두 가지 시리즈 연작이 전시된다. '월 오브 라이트' 연작은 그가 1980년대 멕시코 유카탄 주를 여행하다 고대 마야 성벽에 비친 빛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돌 사이에 햇빛이 새어들어오는 장면을 보곤 마치 빛이 돌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림은 이 장면을 추상적으로 묘사했다. 블록들 사이에서 색채들이 새어나온다.

'랜드라인' 연작은 사진을 즐겨 찍는 그가 풀이 무성하게 자란 대지 뒤 수평선과 하늘이 만나는 장면을 찍고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작업하며 겪은 계절, 당시의 대기와 날씨 등 몸담고 있는 환경들을 작품에 반영한다. 그만큼 주위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작업한다.

미술사에도 관심이 많다. 자신의 작업이 미술사적 맥락에 뒤쳐지지 않도록 항상 탐구와 공부를 거듭한다. 스컬리는 "회화란 매체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전부 녹아있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글처럼 하나의 기록물인 셈인데, 내가 회화에 기록한 역사는 오로지 나의 것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전쟁과 노숙... 그 거친 세월을 녹여 50년 담아낸 '션 스컬리표 추상'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두 가지 연작을 결합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랜드라인' 회화 한가운데를 창문처럼 뚫어 '월 오브 라이트' 작업을 끼워넣었다. 이번 전시만을 위해 처음 제작한 작업이다. 두 가지 작업이 가진 색채, 구조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스컬리는 이 작업에 대해 "바깥 레이어는 세상, 그 속 윈도우는 인간의 서사"라며 "회화 2점을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잇는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자신의 영혼 즉 '소울'을 넣어 한국 관객을 만난다는 의미를 담아 전시 제목을 '소울'로 지었다. 마침 서울과 소울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