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스트 안테스 'Haus früh'(1986) /마이어리거 제공
호르스트 안테스 'Haus früh'(1986) /마이어리거 제공
올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에도 글로벌 화랑의 한국 진출이 성사됐다. 독일의 명문 갤러리 마이어리거다. 1997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기원한 마이어리거는 미리암 칸, 셰일라 힉스, 캐롤라인 바흐만, 존 밀러 등 세계적인 작가 군단을 거느리고 있다.

이번 한국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다. 지난해 초 마이어리거가 한국에 지점을 갖고 있던 에프레미디스 갤러리를 인수·합병(M&A)하면서다. 마이어리거는 3일 서울 삼성동에 갤러리를 개관하고 소속 작가 호르스트 안테스의 개인전으로 신고식을 열었다. 이로써 서울은 베를린, 카를스루에, 바젤, 뉴욕에 이어 마이어리거의 다섯번째 거점이 됐다.
독일 명문 갤러리 마이어리거의 공동설립자 토머스 리거(왼쪽)과 요흔 마이어가 5일 프리즈 서울 마이어리거 부스 앞에 서 있다. /안시욱 기자
독일 명문 갤러리 마이어리거의 공동설립자 토머스 리거(왼쪽)과 요흔 마이어가 5일 프리즈 서울 마이어리거 부스 앞에 서 있다. /안시욱 기자
세계 미술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아시아의 첫 거점으로 서울을 꼽은 이유는 뭘까. 이번 KIAF-프리즈 서울 현장을 찾은 요흔 마이어, 토마스 리거 공동대표를 5일 마이어리거 부스에서 만났다.

▷최근 서울에 한국지점을 열었다.
마이어 - "한국과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19년에도 한국의 PKM갤러리와 협력했다. 각각 한국과 독일의 작가들을 상대 국가에서 소개하며 교류하며 한국 미술계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미술을 통해 한국·독일 두 문화 사이의 대화를 끌어내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론 서울 지점을 기반으로 아시아에서 활동 저변을 넓히고자 한다."
독일 명문 갤러리 마이어리거의 공동설립자 요흔 마이어(왼쪽)과 토머스 리거(왼쪽). /안시욱 기자
독일 명문 갤러리 마이어리거의 공동설립자 요흔 마이어(왼쪽)과 토머스 리거(왼쪽). /안시욱 기자
▷아시아의 여러 도시 중 서울을 진출지로 선택한 이유가 뭔가.
리거 - "여러 차례 리서치와 현장 답사 끝에 조심스럽게 결정한 결과다.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 매력적인 대안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정치적인 문제가 리스크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한국 미술의 저력에 반했다. 한국의 작가와 갤러리들은 단색화 등으로 세계 미술사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무언가 나오고 있구나'라는 기대를 안고 한국 진출을 결정했다."

▷앞으로 어떤 한국 작가들을 발굴해서 소개할 건가
리거 - "아직 알아가는 단계다. 한국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를 찾는 등 관계를 시작하는 단계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조사할 계획이다.
물밑에서는 유망한 한국 작가분들을 초빙하려고 치열하게 애쓰고 있다. 이미 기반을 다진 한국 갤러리들과 협업해서 함께 작가를 외국에 소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2024 프리즈 서울에 설치된 마이어리거 부스 전경. /안시욱 기자
2024 프리즈 서울에 설치된 마이어리거 부스 전경. /안시욱 기자
마이어리거는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파리의 조셀린울프 갤러리와 공동 부스를 마련했다. 지난 2022년 KIAF-프리즈 서울이 처음 공동 개최된 이후 3년째 참석이다. 미리암 칸, 호르스트 안테스, 카틴카 보크, 캐롤라인 바흐만, 토니 저스트, 엘마 펠드핸들러, 산티아고 데 파올리 등 작가 6명의 작품을 걸었다.

▷어떤 기준으로 6명의 작가를 골랐나.
리거 - "마이어리거 부스에 소개된 6명의 예술가는 각양각색의 매력을 갖고 있다. 미리암 칸의 경우 명성이 높은 만큼, 컬렉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작품을 들고 왔다.
작품 판매도 중요하지만, 갤러리의 역할은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해 키우는 것이다. 이번 부스에 출품한 엘마 펠드핸들러의 경우 올해 28세를 맞은 젊은 작가다. 신진 작가부터 중견, 원로 작가까지 두루 소개할 수 있는 부스를 마련했다."
2024 프리즈 서울에 설치된 마이어리거 부스 전경. /안시욱 기자
2024 프리즈 서울에 설치된 마이어리거 부스 전경. /안시욱 기자
▷벌써 세 번째 KIAF-프리즈 서울 참석이다. 올해 분위기는 어떤가.
마이어 - "개막 이틀 차인 오늘까지 성적은지난해보다 좋다. 이번 프리즈 서울이 작년에 비해 시들하다는 일부 평가도 있지만, 여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술 분야에서 30년 넘게 종사하다 보니 단기적인 부침에 익숙하다. 시류에 따라 흘러가면서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아시아 미술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리거 - "현재 아시아 미술시장도 불안정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상황은 북미나 유럽보다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미술품 컬렉팅 문화에 있어서 한국이 성장하는 단계라면, 서구권은 수축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한국이 더 매력적이다."
호르스트 안테스 '28 Tage'(2016) /마이어리거 제공
호르스트 안테스 '28 Tage'(2016) /마이어리거 제공
마이어리거는 프리즈와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아트바젤'과도 긴말하게 연결됐다. 요흔 마이어 공동대표는 지난 20여년 간 아트바젤 참여갤러리 선정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베를린 화랑가의 연중 최대 행사인 '갤러리 위크앤드'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오는 2026년 KIAF-프리즈 서울의 공동 개최 계약이 만료된다. 아트바젤 등에서 활동하며 글로벌 아트페어의 생태를 잘 알지 않나. KIAF-프리즈 서울은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하나?
리거 - "KIAF-프리즈 서울 공동 개최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 프리즈는 한국 현대미술이 발전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먼저 국제적인 관중을 한국으로 불러왔다. 단순히 미술시장의 규모 차원 얘기가 아니다. 프리즈 서울 바깥에서 열리는 미술관 전시, 전국 곳곳의 비엔날레 수준도 덩달아 발전했다."

▷만약 KIAF-프리즈 서울이 공동 개최하지 않는다면, 마이어리거는 KIAF에 출품할 건가?
리거 -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KIAF가 한국 화랑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공동체 정신은 유럽 화랑들의 문화와도 닮았다. 베를린 갤러리 위크앤드도 화랑들의 모임이 발전한 결과다.
한국 땅에 발을 붙이고 로컬 미술계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고 싶다. KIAF뿐 아니라 부산아트페어 등 다른 지역 아트페어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미리암 칸, 'wachstumsenergie im herbst'(2022) /마이어리거 제공
미리암 칸, 'wachstumsenergie im herbst'(2022) /마이어리거 제공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