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투의 '역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의 놀라운 피날레
핀란드 지휘자 한누 린투는 오래 전부터 서울시향과 인연을 맺어왔다. 2012년, 2016년, 2017년에 서울시향을 지휘했고, 특히 2017년에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7년 만에 역시 쇼스타코비치가 쓴 ‘교향곡 제15번’을 들고 찾아왔다. 쇼스타코비치의 첫 교향곡에 이어 마지막 교향곡을 선곡한 것은, 한누 린투가 서울시향과 맺은 오랜 인연과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인한 그동안의 단절 모두를 상징하기에 알맞아 보인다.

첫 곡인 핀란드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1952~2023)의 ‘겨울 하늘’은 린투의 장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단순히 모국의 유명 작곡가 작품이라서가 아니다. 린투는 2007년에 작곡가와 논의하면서 이 곡을 녹음한 바 있고, 올해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데뷔 무대에서도 같은 곡을 지휘했다.

실제로 린투는 이번 공연에서도 자신이 이 곡을 속속들이 꿰고 있음을 증명했다. 핀란드 작곡가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청명한 냉기가 흐르는 가운데 다양한 악기가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명멸했다. 흘러가는 구름, 멀리서 비치는 빗줄기 등 음악을 시각화하는 작곡가의 재능이 실로 유감없이 발휘된 연주였다.
린투의 '역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의 놀라운 피날레
다음 순서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독주를 맡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독일의 중견 바이올리니스트로, 2019년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날카롭고 예민한 것으로 정평이 있는데, 이번 공연도 그랬다.

테츨라프는 한 음 한 음을 선명하게 뽑아내면서 리듬감과 활기가 돋보이는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1악장 전반부처럼 다소 불안정하게 깔쭉깔쭉한 연주를 들려주거나 3악장의 일부 대목처럼 의욕이 지나쳐 오케스트라를 앞서려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2악장만큼은 대단히 차분하고 매끄러웠으며, 앙코르로 들려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중 ‘안단테’의 경우 더할 나위 없이 단아하고 정갈한 연주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백미는 역시 쇼스타코비치였다. 서울시향은 그동안 쇼스타코비치의 여러 교향곡에서 명연을 들려준 바 있지만, ‘교향곡 제15번’처럼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곡을 이처럼 멋지게 소화해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이번 공연은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다. 모든 성부가 잘 균형 잡혀 있는 데다 어떤 세부도 놓치지 않고 선명하게 다듬어낸 연주였다. 2악장에서 첼로 수석이 들려준 애잔한 독주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피날레 마지막에 타악기 주자들이 들려준 정교한 합주였다.
린투의 '역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의 놀라운 피날레
한누 린투는 우리나라에 오기 전에 왼발을 다쳤으며, 그 때문에 이번 공연 직전에 대만에서 가질 예정이었던 공연도 취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깁스한 왼발을 끌다시피 하면서 무대에 등장했으면서도, 비록 의자에 앉은 채였지만 온몸을 들썩여 가면서 열정적으로 지휘했다.

그러나 그와 서울시향의 열연이 무색할 정도로 이날 청중의 태도는 최악이었다. 공연 중간에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 소리가 들렸고, 특히 피날레 맨 마지막 음과 동시에 울린 휴대폰은 그 절묘한 타이밍에 헛웃음까지 나왔다. 이런 것은 근래 흔한 현상이니까 어떻게 넘어간다 해도, 중간 휴식 시간에 관객 두 명이 공연장 내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싸운 것은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린투의 '역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의 놀라운 피날레
마침 내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앞줄에 앉은 부부가 공연 중간에 서로 오페라글라스(오페라를 관람할 때 쓰는 작은 쌍안경)를 자꾸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거슬렸다는 것이다. 사실 콘서트장에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오는 것도 썩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콘서트장에서는 연주자의 얼굴보다 음악이 더 중요하고, 연주자 가운데는 얼굴을 주목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콘서트장에서 고성을 질러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