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소형 전기차 EV3가 돌풍이다. 지난달 판매량이 전월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내로라하는 내연기관차들을 따돌리고 국산 차 전체 판매량 7위에 안착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전기차 화재로 인한 기피 현상 등 '겹악재'를 뚫고 이룬 성과여서 주목된다.

8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기아 EV3는 지난달 4209대 팔렸다. 전월(1126대)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8월 국산 차 판매량 순위에서 EV3는 전기차 1위에 올랐다. 전체 판매량에서도 현대차 아반떼(3317대)와 투싼(3217대), 기아 쏘렌토(3026대) 등을 따돌리며 7위를 기록했다.

EV3의 경쟁 차종으로 꼽히던 레이EV는 판매량이 확연히 줄었다. 기아에 따르면 지난달 레이EV의 판매량은 923대로 전달(1407대)보다 줄었다. 전체 레이 판매량에서 레이EV가 차지하는 비중도 7월 약 32%에서 8월 25%로 쪼그라들었다.

EV3는 국내 시장에서 전기차 1위를 독주하던 테슬라의 판매량도 압도적으로 제쳤다. 테슬라의 국내 주력 차종인 모델Y는 지난달 전월 대비 25.1% 감소한 1215대 팔렸다. 모델Y는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1만41대 판매돼 현대차 아이오닉5(6897대), 기아 EV6(5269대)를 크게 앞질렀다. 그러나 하반기 EV3가 본격 출고되면서 상황이 반전되는 모습이다.

기아의 전기차 판매량도 덩달아 올라갔다. 지난달 국내 신규 등록된 기아 전기차는 전년 대비 250% 증가한 6398대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해서는 58.7% 증가했다. 이는 양산형 전기 승용차가 출시된 2011년 이후 국내외 브랜드를 통틀어 월 최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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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성으로 무장한 EV3..."대중화 가능성 보여줬다" 평가

EV3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자동차 리서치 전문기업 컨슈머인사이트가 2년 이내 신차 구입계획을 가진 자동차 소비자 500여명 대상으로 출시 전후 기간 신차에 대한 반응을 묻는 조사 결과에 따르면 EV3가 신차 구입의향 20.5%를 차지하면서 종합 순위 1위에 올랐다.

컨슈머인사이트 측은 "EV3는 남녀 모두에서 구매 의향도가 전월 대비 상승했다. 전 연령대에서 구입 의향 1위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배터리 화재 이후로, 전기차 기피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EV3 인기는 이례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특히 전기차 화재로 지난달 수입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34.8% 감소한 1907대를 기록했다.

EV3 인기의 비결로는 대중화를 겨냥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EV3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플랫폼 E-GMP를 탑재한 순수 전기차다. 현대차그룹에서 소형 차급에 E-GMP 플랫폼을 사용한 첫 사례다.

여기에 삼원계(NCM) 국산 배터리를 사용해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를 501㎞로 확 늘렸다. 코나(417㎞), 레이EV(201㎞) 등 경쟁 차급과 비교해도 월등한 수준. 가격 또한 보조금을 받으면 실구매가 3000만원대로 낮아진다. 전기차의 단점으로 꼽히는 울렁거림 등 승차감을 개선하기 위해 회생제동 기능도 대폭 손봤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지난 5월 열린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EV3의 판매 목표로 국내와 유럽, 미국 등을 포함한 글로벌 연 판매량 20만대를 제시한 바 있다. 송 사장은 "국내는 연 2만5000~3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천 화재 이후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배터리부터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등 안목이 높아졌다. 이를 감안하면 EV3는 전기차가 상품성만 갖추고 있다면 충분히 대중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