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시청역 사고 현장에 새로 설치된 차량용 방호울타리,/조철오 기자
6일 시청역 사고 현장에 새로 설치된 차량용 방호울타리,/조철오 기자
6일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세종대로18길. 매끈한 철제 울타리가 인도와 차도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지난 7월 1일 일어난 '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훼손된 기존 보행자용 울타리가 '차량용 방호울타리'로 교체됐다. 도로 반대편엔 알루미늄 재질의 기존 울타리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현장에 설치된 차량 방호울타리가 정작 비슷한 수준의 차량 추돌을 막지 못하는 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해당 방호울타리를 시내에 확대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1급 차량 방호울타리, 고속 돌진 못견딘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시청역 사고 현장에 36m 길이의 차량 방호울타리를 설치했다. 기존 알루미늄 재질 보행자용 방호울타리보다 강도가 센 철제 울타리다. 경사지나 철도 인근, 교량·터널 전후에 주로 설치되는 것을 보행로에 설치하는 것이라 이례적이다. 시는 비슷한 사고 위험이 가능성이 있는 시내 전역에 해당 울타리를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철제 차량 방호울타리는 강도에 따라 1~7등급으로 나뉜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강도가 세지는데 7등급은 1등급보다 100배 더 큰 힘을 버틸 수 있다. 시청역 사고 현장에 새로 설치된 차량용 방호울타리는 1등급으로 8t 무게의 차량이 시속 55km, 15도 각도로 충돌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됐다. 국토교통부는 1급 울타리는 차량이 시속 60㎞ 이하로 달리는 도로 인근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1등급 차량 방호울타리는 시청역 사고 때처럼 2t 무게의 승용차가 시속 107㎞로 덮치는 충격은 이겨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승합차, 버스 등 더 무거운 차량의 저속 충돌도 막을 수 없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1등급은 저속 충돌을 견디기 위해 설계됐다"며 "시청역 사고처럼 차가 급가속해서 시속 107㎞로 돌진하는 건 못 막는다"고 했다.

서울시는 도심에서는 차량 제한속도가 있기 때문에 SB1급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도로교통법상 시내 도로는 시속 50km의 속도 제한이 있다"며 "속도 규정을 감안해서 SB1급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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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용 울타리, 보행자용보다 2배 비싸

가격도 문제다. 서울시에 따르면 차량용 방호울타리는 1m에 15만~20만원 수준이지만 차량용 방호울타리는 35만~40만원에 달한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비용도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역 사고 현장에 울타리 36m를 설치하는데 기존에 있던 보행자용 울타리 2배 이상인 1044만원이 투입됐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시청역 사고 같은 이례적 사고까지 막기 위해 높은 등급의 울타리를 쓰는 것도 부적절하다”며 “운전자가 치명상을 입을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량 대 사람 사고 중 보행로에서 일어나는 사고 비율은 극히 낮아 차량용 방호울타리 설치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2년 일어난 차대 사람 교통사고(11만589건) 중 보행자가 보도 통행 중에 일어난 사고는 2822건으로 전체의 2.5%에 불과했다.

울타리가 필요 이상으로 설치될 경우 택시 승하차가 어려워지고 소방차, 구급차의 진입을 막는 등 각종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울타리가 많아질 경우 시민 이동을 제한하고 도시에 폐쇄적인 느낌을 줘 해외에서는 최소한으로 설치하는 추세"라며 "급경사로, 교차로 등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지점에만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차량 돌진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운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는 도로 구조와 교통신호체계를 개편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