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탈원전 대참사' 극복한 체코 원전 수주
자해(自害)에 가까운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은 ‘대참사’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7000억원을 들여 설비를 교체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계속 운전 승인을 받은 뒤 재가동에 들어갔던 월성 1호기는 불과 1년 만에 청와대까지 직접 개입한 경제성 평가 조작을 통해 입장이 바뀌어 영구 정지했다. 부지 조성이 진행되던 신한울 3·4호기는 건설을 취소했다. 경북 영덕과 강원 삼척의 천지 1·2호기와 대진 1·2호기 건설도 백지화됐다.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던 원전 산업도 급속하게 무너졌다. 두산중공업은 매출이 7조원 이상 감소했고 대규모 희망퇴직과 함께 1조원의 긴급 금융지원을 받기에 이르렀다. 경남 창원의 협력사들도 직격탄을 맞으며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 직전으로 내몰렸다.

10조원 넘게 흑자를 내던 한국전력은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대규모 적자의 진통을 겪고 있다. 올 상반기 203조원을 기록한 한전의 부채는 2021년 대비 40%가량 급증한 것이다. 그동안 이자를 갚는 데 2조2841억원을 썼다. 매일 이자로만 126억원을 지출한 셈이다. 적자 누적으로 송·변전·배전 설비 투자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서 전력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가의 미래와 민생에 직결되는 에너지 정책인데 무모한 탈원전 추진이 남긴 상처가 이렇게 크다.

지난 7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이 선정된 것은 ‘탈원전 대참사’ 5년의 시련을 딛고 정부와 기업의 ‘민관협력’ 총력전이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역대 최대인 24조원 규모의 사업일 뿐 아니라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에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 원전의 경쟁력은 시공과 제조를 넘어 설계까지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한 데서 나온다. 안전성에 더해 프랑스 대비 건설 단가가 절반에 불과한 경제성까지 갖췄다.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원자력 정상회의’에서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경제 발전 촉진을 위한 원전의 역할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원전의 안전한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청정 에너지원을 대규모로 확보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탈원전을 선언하고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시도했던 많은 유럽 국가가 원전으로 유턴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의 급성장, 전기차 전환 등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해 불안정한 신재생에너지로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가안보 차원에서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전 세계가 원전 르네상스 시대로 가고 있는 때에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원전 산업 축적의 성과가 빛을 발할 시간이 된 것이다.

2015년 한국과 체코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고 2025년 양국 수교 35주년을 맞는 시점에 이뤄지는 체코 원전 수주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아직 우선협상대상자 지위에 불과하고 내년 3월 최종 계약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특허권 관련 분쟁의 원만한 해결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에너지 정책의 ‘탈정치화’다. 원전은 건설에만 10년이 소요되는 100년 사업이다. 향후 원전 수출 확대 과정에서 정권에 따라 ‘탈원전’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비친다면 최악이 아닐 수 없다. 정쟁에 따른 사법 리스크 없이 관계 공무원들이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정책의 탈정치화는 꼭 필요하다.

세 차례나 수감되며 1989년 체코의 벨벳혁명을 이끌었던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꿈꾸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남긴 “진실과 사랑은 거짓과 증오를 이길 것이다”라는 말처럼 탈원전의 거짓은 결국 진실을 이기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4대 그룹 총수가 참여하는 경제사절단의 체코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원전 협력을 넘어 지속해서 상호 발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