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1000명을 기준으로 내 피부는 몇 등인지부터 피부 나이, 유형, 알맞은 화장품 성분과 원료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일 경기 성남 판교 코스맥스 연구혁신(R&I) 센터. 조형우 코스맥스 책임연구원은 기자에게 피부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생태계) 채취를 권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기다란 면봉으로 얼굴 피부를 문질러 마이크로바이옴을 채취한 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분석하면 개인별로 피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유익균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확보한 피부 유익균은 3000여 개로,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화장품을 개발할 수 있다.

2011년 판교에 둥지를 튼 코스맥스 R&I 센터는 글로벌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1위 기업이자 ‘K뷰티 열풍’의 숨은 주역인 코스맥스의 심장부다. 이곳에 모인 연구원 1000명은 연간 8000개 이상 신제품을 개발한다.
"AI로 맞춤 화장품 개발"…K뷰티 혁신의 산실 코스맥스

연구개발(R&D) 아닌 ‘연구혁신’

코스맥스는 연 29억 개 화장품 생산 능력을 갖춘 세계 최대 ODM 회사다. 1992년 설립 후 국내 화장품산업 발전과 함께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왔다. 올해 코스맥스 매출은 사상 처음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증권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코스맥스는 R&D 대신 R&I라는 용어를 쓴다. 11개국 R&I 센터 20여 곳에 연구 인력 4000여 명을 보유한 글로벌 1위 화장품 기업 로레알그룹을 벤치마킹해 ‘혁신성’을 강조했다.

창업자 이경수 회장은 코스맥스의 R&I 혁신 경쟁력으로 코스맥스만의 원료·소재, 새로운 제형과 처방, 개인화·맞춤화 등 세 가지를 강조한다. 최근 역점을 두는 분야는 미래 화장품 시장 트렌드로 꼽히는 개인화·맞춤화다. 올해 5월 개발에 성공한 ‘스마트 조색 AI 시스템’(사진)이 대표적 성과다. 코스맥스는 뷰티업계 최초로 색조 등 메이크업 제품 개발 과정에 딥러닝을 비롯해 AI 기술을 적용했다. 과거엔 연구원 개개인이 원하는 색상이 나올 때까지 색소 종류·함량에 변화를 주며 일일이 색을 맞춰봐야 했다. 스마트 조색 AI 시스템을 활용하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정확한 색상을 도출할 수 있다.

조색에 AI 기술을 접목하자 색조화장품 제품 개발에 탄력이 붙었다. 박천호 R&I 유닛장은 “국내를 비롯해 중국·일본에 쿠션 파운데이션 등을 선보일 때는 5~6가지 색상이면 충분했지만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선 30~50개 색상을 개발해 공급해야 하는데, AI 시스템 덕분에 빠른 속도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가수 겸 배우 설리나 고메즈가 선보인 ‘레어뷰티’, 팝스타 리애나의 ‘펜티뷰티’ 등이 이렇게 개발해 생산한 코스맥스 제품을 판매한다.

日 기술 종속 끊어낸 뚝심

글로벌 유수의 뷰티 브랜드는 이런 코스맥스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제품 개발과 생산을 맡겼다. 코스맥스는 2007년 젤 타입 아이라이너를 개발해 로레알그룹의 랑콤, 메이블린 등에 1억5000만 개 이상 공급했다. 2013년 개발한 쿠션 파운데이션은 랑콤과 시세이도, 에스티로더 등이 5억 개 넘게 사갔다.

현재 코스맥스 고객사는 3300개에 달한다. 이 중 1500여 개가 국내 K뷰티 브랜드다. 글로벌 뷰티 기업 ‘톱20’ 중에선 로레알, 랑콤, 입생로랑 등 18곳이 코스맥스와 거래하고 있다.

ODM 업체 코스맥스가 세계적 기술 경쟁력을 갖춘 배경엔 이 회장의 기술을 향한 집념이 있다. 코스맥스는 1992년 설립 당시 일본의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 미로토와 기술 제휴를 하고 ‘한국미로토’란 사명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미로토가 한국에 자체 연구소를 세우는 데 반대하자 과감히 제휴를 끊고 1994년 사명을 코스맥스로 바꿨다. 이후 코스맥스는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R&I에 투자하는 원칙을 수립해 실천하고 있다.

코스맥스는 ODM을 넘어 브랜드까지 직접 고안해 고객사에 제안하는 제조업자브랜드개발생산(OBM)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오형주/전설리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