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 아니면 출입금지? … 통행로 막으면 안되는 이유
"공공보행로·커뮤니티 개방의 조건으로 용적률을 받았나 안 받았나, 그게 이행강제금을 매기는 기준이죠."(국토교통부 관계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과 서초구 반포동에 새 아파트가 잇따라 완공되자 단지 개방을 두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재건축 때 기부채납(공공기여) 외에 요구하는 것이 공공보행통로와 개방형 커뮤니티다.

먼저 외부인이 단지를 가로질러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공공보행통로'가 시작이었다. 강남구 개포동 새 아파트 단지인 래미안블레스티지와 디에이치아너힐즈, 잠원동 반포센트럴자이와 신반포자이·아크로리버뷰신반포 등에 이런 공공보행통로가 만들어졌는데, 주민이 담장을 세워 보행을 막은 것. 래미안 원베일리에서도 공공보행로에 펜스를 치고 행인의 휴대전화를 검사해 단지 내부 사진의 삭제를 요청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주민 이익 없이 불편만 초래" vs "위반건축물"

공공보행통로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지가 너무 클 때 보행 흐름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단지 주변을 빙 돌아가야 한다는 것. 수백가구 단지면 둘러 가도 되지만 수천가구가 되면 불편함은 커진다.

문제는 이들 단지가 용적률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아파트 소유자가 얻는 것도 없이 사유지 상당 부분을 공공을 위해 내놓는 게 타당하냐는 반박도 강하게 제기된다. 서울시가 용적률을 올려주는 대신 기부채납(공공기여)을 받는 게 공식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부채납이면서도 아파트 소유자는 용적률 등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국토부와 지자체 간 미묘한 입장차가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제로 담장이 세워진 8개 단지를 돌아보니 단지 주민의 우려도 납득이 간다"며 "이 단지들은 용적률 혜택을 일절 받지 못했기 때문에 '회초리'만 갖고 해결만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와 자치구는 강경하다. 서초구는 "공공보행통로에 펜스를 설치하려고 할 경우 행위허가를 내줄 수 없다"며 "지장물이나 개폐장치를 설치하면 위반건축물로 올려 이행강제금을 매길 수 있다"고 밝혔다. 위반건축물로 등재되면 주택담보대출 등에도 제약이 따르고, 시가표준액의 0.3%까지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아파트 주민 아니면 출입금지? … 통행로 막으면 안되는 이유
다만 지구단위계획의 법적 근거인 국토계획법으로는 이행강제금을 매기는 조항도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서울시도 보수적인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행강제금 부과 기준을 마련하려고 공동주택관리법 개정 건의를 검토하다가 중단됐다"며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이행강제금 부과 상한선이 500만~1000만원 정도에 불과해 주민 한 명당 몇천원만 내면 펜스를 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신 서울시는 용적률을 줘서 '기브앤 테이크'(주고받기)를 하기로 했다. 소유권에 준한 지역권을 설정해 공공보행통로를 보호하는 대신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부터 공공보행통로 조성에 따른 허용용적률 인센티브가 5%포인트 안팎으로 정비계획에 반영되고 있다. 최근 최종 고시가 이뤄진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공공보행통로에 지역권을 설정하기로 하면서 주택용지에 4.7%포인트, 복합용지(준주거지)에 10%포인트의 용적률 인센티브가 명시됐다. 지역권이 설정되면 입주자대표회의가 통로를 막아도 지역권자인 자치구는 즉각 강제로 원상복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주민공동시설은 이행강제금 '세게'

주민공동시설은 공공보행통로와는 다른 규제가 적용된다. 공공보행통로는 국토계획법에 근거한 것이라 이행강제금 부과 기준이 모호하지만, 주민공동시설은 건축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행강제금은 건축법과 공동주택관리법 관련 규정이 있다. 건축법은 단지 전체 시가표준액의 0.3%, 공동주택관리법은 1000만원이 상한선이다. 건축법을 적용할 때가 '징벌적'이란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보행통로는 정비계획 결정 시점에서, 주민공동시설은 건축계획에서 확정된다"며 "적용 법이 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해 용적률이나 건폐율 등의 혜택을 받은 경우 건축법을 적용해 이행강제금을 세게 부과하겠다는 게 서울시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공동주택 주민공동시설 개방 운영 기준'을 만들고 있다.

실제로 31개 단지의 주민공동시설은 지구단위계획에 개방하라는 조건이 명시돼 있다. 31개 단지 중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와 래미안 원베일리만 입주한 상태다. 공교롭게도 두 단지 모두 주민공동시설 개방이 문제가 됐다.
아파트 주민 아니면 출입금지? … 통행로 막으면 안되는 이유
단지에 따라 정비계획에 주민공동시설의 개방이 담긴 경우도 있다. 래미안 원베일리의 정비계획엔 "공공개방시설은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지역민이 이용 가능한 주민공동시설로 계획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주민공동시설 법적 면적의 3분의 1 이상은 개방형 커뮤니티로 확보하고 외부에서 접근이 가능하도록 지상 1~3층에 설치하는 것을 권장한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들어갔다. 기타주민공동시설은 공공개방 시설 및 커뮤니티시설로 들어간다고 각주를 달아 명시화했다. 카페나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 '기타' 주민공동시설을 개방하라고 여러 차례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서울시는 '개방'의 약속을 좀 더 확실하게 못 박기 위해 건축심의부터 입주자대표회의까지 지속적으로 명시하기로 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시설 개방 약속을 지키도록 공동주택 관리법에 법적 근거를 명시화하는 방안을 건의할 예정이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