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청약' 뚫고도…눈물로 포기할 수밖에 없던 속사정은
'20억 로또' 분양단지로 불리며 청약시장을 달궜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에서 대규모 계약 포기 사례가 쏟아졌다. 부적격, 당첨 포기 등으로 나온 미계약 물량이 일반분양분 292가구 중 17%인 50가구에 이른다. 또 다른 '로또 청약 단지'인 강남구 도곡동 '래미안 레벤투스'도 일반분양 물량의 20%가 넘는 31가구가 다시 청약시장에 나온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로또 못지않은 시세차익을 보장받은 당첨자는 어떤 이유로 당첨을 포기하는지 알아봤다.
'20억 로또' 분양단지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에서 계약 포기 사례가 잇따랐다. '래미안 원펜타스' 모습./한경DB
'20억 로또' 분양단지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에서 계약 포기 사례가 잇따랐다. '래미안 원펜타스' 모습./한경DB

형제·자매는 부양가족이 아니라니


'로또 청약'을 포기한 사례는 크게 당첨자가 부적격 판정을 받아 당첨이 무효로 처리되는 경우와 당첨자가 스스로 당첨 자격을 포기하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한국부동산마케팅협회 소속 회원사인 미드미네트웍스가 '래미안 원펜타스'와 '래미안 레벤투스'의 부적격 및 포기 사례를 분석 한 결과 부적격 주요 사유로는 △부양가족 수(20%) △소득 초과(20%)가 가장 많이 꼽혔다.

부양가족 수를 잘못 이해한 경우가 많았다. 가점제에서 부양가족을 계산할 때는 청약을 한 사람과 동일한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세대원일 경우여야만 한다. 배우자, 직계존속, 직계비속만 포함된다. 형제, 자매는 부양가족에 포함되지 않는데 이를 포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만 65세 이상 부모 또는 조부모를 3년 이상 부양한 무주택자에게 당첨 기회를 주는 '노부모 특별공급' 전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때 역시 3년 이상 부양했는지 여부를 주민등록등본을 보고 판단한다. 등본상 세대 분리가 된 경우에는 실제 부양 여부와 무관하게 부양 기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신혼부부와 생애최초 특별공급 물량은 소득을 초과한 사례가 많았다. 본인이나 배우자의 소득분위를 잘못 계산한 경우가 부적격자의 20%에 달했다. 그밖에 부적격 사유로는 이미 주택을 소유한 경우가 18%, 자격 신청 오류 16%, 중복 당첨 10%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래미안 레벤투스'는 일반분양 물량의 20%가 분양 포기분으로 나온다. '래미안 레벤투스' 조감도. /한경DB
서울 강남구 도곡동 '래미안 레벤투스'는 일반분양 물량의 20%가 분양 포기분으로 나온다. '래미안 레벤투스' 조감도. /한경DB

대출이 이것밖에…? 계획없이 청약했다 눈물


자격은 적합하지만 스스로 당첨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당첨 포기자의 53%는 자금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집계됐다. 분양가에 대한 자금계획 없이 청약에 나섰다가 당첨된 경우다. 일반적으로 분양가의 계약금은 10% 수준이지만 투기과열지구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는 계약금이 20%에 이른다. 예컨대 분양가가 20억원이라면 4억원을 바로 현금으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잔금 대출 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뿐 아니라 담보인정비율(LTV)의 50%도 적용받는다. 무주택자가 아닌 1주택자라면 LTV가 30%로 낮아진다. 시스템에어컨 등 추가 옵션 금액은 집단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각종 세금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 포기 사례도 적지 않았다. 연습 삼아 청약에 나섰다가 당첨이 돼 포기하는 사례도 있었다. 국토교통부가 부적격자를 전수조사한다고 나서자 위장전입 의심자들이 미리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포기 사례가 잇따르자 부동산 업계에선 청약 제도 개선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현행 청약 제도가 너무 복잡해 부적격·포기 사례가 잇따른다는 지적이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부적격, 계약 포기 등의 사례가 많이 나오는 건 그만큼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의미"라며 "누구나 청약을 통해 어렵지 않게 내 집 마련에 나설 수 있도록 복잡한 청약 제도를 효율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