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에게 음악감독은 '소울 메이트’ 같은 존재다. 그래서 이들의 협업은 종종 오랜 시간 지속된다.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버나드 허만이, 팀 버튼에게 데니 엘프먼이 있다면 박찬욱에게는 조영욱 음악감독이, 김지운에게는 모그 음악 감독이 있다. 모그 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작품들 – <밀정>, <거미집>, <악마를 보았다> 등 – 의 작업뿐 아니라 이창동 감독의 <버닝>, 이준익 감독의 <동주> 등 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의 음악을 담당했다. 모그 감독은 지독한 시네필이기도 하다. 한 여자를 두고 옛 남자와 현재의 남자가 벌이는 대결을 그린 그의 데뷔 단편 <사랑의 힘>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품어 온 것이 분명한 영화를 향한 애정과 존경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다. 이번 영화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방문 중인 모그 감독을 만났다.
모그 감독
모그 감독

▷제천에 음악감독이 아닌, 영화감독으로 참여하는 소감은 어떤가.
"사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초창기 때부터 많은 일로 참여해 왔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했던 영화제 트레일러의 음악을 맡은 적도 있었고, 다른 해에는 트레일러 (임필성 감독이 연출했던)에서 작은 역이지만 출연했던 적도 있었다. 영화 음악 아카데미의 강연으로 온 적도 많았고… 결론은 늘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 왔다는 것이다. 이번에 연출을 한 작품으로 참여했다고 해서 별다르진 않은 것 같다."

▷영화 음악감독이 감독으로 데뷔한 것이 적어도 한국 영화에서는 유례없는 일인 것 같다. 원래 가지고 있던 꿈이었나.
"영화를 어린 시절부터 워낙 좋아했고, 막연히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영화 촬영장에 놀러 가거나, 정탐하러 가보고 했던 것은 그런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는 ‘증상’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뉴욕에 있었을 때 8mm 카메라, 16mm 카메라로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은 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상영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어서 이번 프로젝트와 비견할 수 없긴 하다."

▷이번 단편 <사랑의 힘>의 시초는 무엇이었나.
"평소에 고전을 워낙 좋아했고, 이걸 어떻게 ‘패키징’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예컨대 음악도 아리아를, 문학도 셰익스피어 시대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이런 이야기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결투'라는 소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것들이 혼재되어 뒤섞인 것이 이번 작품 <사랑의 힘>이다. 영화의 장르는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전반은 아리아가 끌어간다. 그리고 결투를 재현하는 은유적인 설정은 ‘팔씨름’이다. 팔씨름은 내가 경험해 본 종류의 결투이기도 하고, 가장 현대적이고 인간적이면서도 일상적인 형태의 결투가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 <사랑의 힘> 스틸컷 / 사진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영화 <사랑의 힘> 스틸컷 / 사진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이미 부천에서도 상영했고 두 번째 영화제 참여다. 곧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의 상영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첫 작품이 곳곳에서 환영을 받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별 말들이 없다 (웃음). 그냥 영화를 좋아하면 만들게 되고, 만들게 되면 영화제에 가는 게 아닌가 정도로만 다들 생각하는 것 같다."

▷워낙 주변 영화인들이 쟁쟁한 사람들이라 감흥이 없는 것뿐이다. (웃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영화를 만드는 일이 주업이다 보니 이게 특별하지 않고, 영화 음악감독이 영화를 만들게 될 수도 있지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영화의 메인 캐릭터는 세 명이다 (아리아를 부르는 캐릭터를 제외하고). 쉽게 말해 구남친, 현남친, 그리고 여자친구로 이루어진 조합이다. 나머지 두 명의 캐릭터에 비해 구남친으로 출연하는 박호산 배우의 나이대가 좀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이루어진 캐스팅인가.
"이 영화의 정체성이 음악 영화이고, 음악 영화를 구상하는 데 있어 오랜 친구인 박호산 배우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지만 호산 배우 역시 음악적인 부심이 있고, 감각이 뛰어난 배우가 아닌가. 이 역할에 있어 다른 배우는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영화를 구상하는 초기 단계부터 호산 배우는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영화 <사랑의 힘> 스틸컷 / 사진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영화 <사랑의 힘> 스틸컷 / 사진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아무래도 음악감독이라는 타이틀, 혹은 명성(?) 때문에라도 이 영화의 음악이 적잖이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 선곡의 기준과 음악의 기준은 어떤 것이었나.
"아리아가 이야기의 흐름을 만드는 영화이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임은 확실하기 때문에 최대한 관객들이 알만한 곡들로 선정했다. 이런 장르가 줄 수 있는 벽을 최대한 낮추고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끔 편곡 자체도 장엄하고 웅장한 느낌을 배제했다. 악기들의 연주 방식들도 이지 리스닝 스타일로 가볍게 바꿨다."

▷이 작품을 구상하는 데 있어 레퍼런스나 영감을 주었던 작품이 있는지.
"많은 거장이 참여했던 옴니버스 프로젝트 <아리아> (1987)라는 영화가 있었다. 아리아를 키워드로 유명 감독들이 각자 만든 단편을 실은 영화다. 특히 참여 감독 중에 켄 러셀을 좋아한다. 켄 러셀은 더 후 (The Who)라는 밴드의 음악영화 <타미> (Tommy, 1975)를 만든 적도 있고 꽤 많은 음악영화 작업을 했었다. 궁극적으로는 이 <아리아>라는 프로젝트가 이번 내 영화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아와 오페라가 감독님에게는 각별한 분야인 듯하다.
"재즈나 하우스, 일렉트로니카 등의 장르들은 내가 실제 작업해 본 경험이 있어서 신비감이 덜하지만 오페라를 포함한 클래식 음악은 전문적으로 작업해 볼 수 없었어서 신비롭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모그 감독
모그 감독
▷영화 음악감독과, 그냥 영화감독의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것인가.
"물론 두 가지 다 협업의 과정을 거치지만 영화 연출 같은 경우 더 많은 설득력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음악을 만드는 일이 주관적이라면 영화는 조금 더 객관적이어야 한달까? 이번 영화를 만들 때도 대사를 쓰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관객이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정서가 잘 전달이 될 수 있을지 고심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현재 하고 있는 (영화) 음악 작업은?
"최근에 디즈니 플러스의 <폭군>을 마쳤고, 김지운 감독의 드라마 <망내인> 작업의 막바지, 그리고 신인 감독의 작품 <열대야>라는 프로젝트를 하는 중이다."

▷분명 장편 (연출)을 위한 계획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달라.
"장편 스크립트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요인으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변화가 예상되는 과정이라 아직 컨셉이나 주제를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


영화 음악의 장인이 만든 음악 영화는 어떤 것일까. 모그의 <사랑의 힘>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남은 기간 동안, 그리고 9월 말에 열리는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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