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한 달 만에 1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00엔당 900원을 밑돌던 원·엔 환율이 지난달 960원대로 튀어 오르자 환율 상승을 기다리던 엔테크 투자자들이 대규모 환차익 실현에 나서면서다. 반면 통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한 달러는 매수 수요가 몰리면서 달러 예금 잔액이 지난달에만 10% 넘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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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8월 말 기준 1조998억엔으로 집계됐다. 7월 말(1조2112억엔)과 비교해 한 달 만에 1114억엔(9.2%) 감소했다. 작년 10월(1조488억엔) 이후 10개월 만의 최저치다.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작년 5월부터 꾸준히 늘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100엔당 1000원 안팎에 형성되던 원·엔 환율이 같은 해 6월께 900원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저렴한 엔화를 미리 사두려는 엔테크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원·엔 재정환율은 작년 11월 16일 856원80전까지 떨어졌다.

엔테크 열풍은 올해도 이어져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올 들어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 연속 늘었다. 이에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 6월 말 1조2929억엔으로 불어났다.

줄곧 늘어나던 엔화예금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7월부터다. 7월 11일 100엔당 852원72전까지 떨어진 원·엔 환율이 2주 뒤인 25일 906원41전으로 6% 넘게 오르자 일부 환차익 매물이 시장에 풀리면서 7월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6.3% 줄었다.

지난달엔 엔화 매도세가 더 강해졌다. 일본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원·엔 환율이 지난 8월 5일 964원60전까지 치솟자 차익실현 매물이 본격적으로 쏟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작년 상반기부터 1년 넘게 이어진 ‘엔저’에 지친 투자자들이 비로소 환차익을 낼 수 있는 시기에 대량으로 엔화를 매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엔화와 달리 달러는 매수 수요가 몰렸다.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634억8700만달러로 7월 말(575억6700만달러)과 비교해 1개월 만에 59억2000만달러(10.3%) 늘었다. 지난 6월 이후 3개월 연속 이어진 증가세다.

수개월간 1370~1380원대로 높게 형성됐던 원·달러 환율이 8월 하순께 1320~1330원대로 급락하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미리 달러를 사두려는 수요가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오후 3시30분 기준 원·달러 환율 종가는 8월 12일 1372원에서 2주 뒤인 26일 1326원80전까지 하락했다.

다만 급격한 속도로 진행된 엔화 강세와 달러 약세 현상이 장기간 지속될지는 미지수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금융시장 변동성 억제를 위해 엔화 약세를 용인할 확률이 높다”며 “미국의 성장세를 봤을 때 달러 약세가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