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방파제’로 불리는 주택연금을 깨는 해지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받은 연금을 토해내더라도 향후 집값 상승에 따른 이익이 클 것으로 판단한 이들이 늘어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9일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7월 주택연금 해지 건수는 376건이었다. 작년 7월(277건)보다 36% 늘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부동산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이 극에 달한 2021년 11월(407건) 후 32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주택연금 이탈자가 급증한 것은 가입자 사이에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주택연금은 한 번 연금에 가입하면 이후 추가로 오른 집값이 연금 수령액에 비례해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집값이 내려가더라도 이미 정해진 연금 지급액이 줄어들지 않는다.

신규 가입자도 크게 줄었다. 아직 부동산 가격이 고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예비 가입자가 가입 시점을 미루고 있어서다. 7월 주택연금 가입 건수는 1066건으로 전달(1450건) 대비 400건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연금 가입 조건을 대폭 완화했지만 이탈자를 막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택금융공사는 작년 10월 주택 공시 기준 9억원이던 가입 조건을 12억원으로 완화했다. 공사 관계자는 “예상보다 가파르게 부동산시장이 달아오르자 일부 손실을 감수하고 연금을 중도 해지한 이들이 늘어난 것 같다”며 “다만 집값이 오르더라도 가입자가 사망한 뒤 상승분의 차액을 자녀들에게 상속해 손해 보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집값 오르자 "손해보는 느낌"…노원구 집주인, 결국 '베팅'

'노후 안전판' 깨고, 부동산 상승에 베팅했다
7월 주택연금 해지 급증…"집값 고점 멀었다" 기대감 반영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아파트(전용면적 84㎡)에 실거주 중인 A씨는 최근 주택연금을 중도 해지했다. 아파트 가격이 전고점을 돌파했지만 5년 전 가입한 주택연금 수령액이 당시 시세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A씨는 “노후를 위한 마지막 보루로 택한 주택연금이지만 연금을 수령할 때마다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A씨처럼 주택연금을 이탈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간 받았던 연금을 몽땅 반환하더라도 가격이 급등한 내 집을 쥐고 있겠다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다. 하지만 ‘섣부른 해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각종 해지 비용과 재가입 금지 기간을 감안할 때 자칫 실익보다 손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추가 상승에 베팅

주택연금 해지는 부동산 상승기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최근 역대급 가계대출을 일으키며 수도권 집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이번에도 주택연금 이탈자가 속출하는 분위기다. 지난달부터 금융권에서 쏟아진 대출 규제로 수도권 집값이 한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연금 해지를 택한 가입자가 적지 않다. 지난달 주택연금 해지 건수가 32개월 만에 최대치로 불어난 이유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7월 해지 건수는 올 들어 가장 많은 376건을 기록했다.

주택연금이란 노후생활을 위해 자신이 소유하고 거주 중인 주택을 담보로 평생 매달 일정 금액을 받는 금융상품이다. 특히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고령층엔 ‘노후 방파제’로 불린다.

최근 주택연금 가입·해지 추이는 부동산 가격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가 실려 있다. 2021년 당시엔 역대급 해지와 함께 신규 가입자가 1만 가구를 넘어섰다. 가입 시점 집값에 따라 연금액이 설정되는 점을 감안할 때 가입 당시를 고점으로 여긴 이들이 상당했다는 얘기다.

반면 올 7월에는 가입이 줄고 해지 건수만 늘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승 가능성을 더욱 높게 보는 분위기가 주택연금 추이에 반영된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주택연금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집값 급등하면 손해일까

다만 주택연금을 해지하면 그간 받은 연금은 물론 이자와 보증료 등을 함께 반환해야 한다는 점을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연금 가입자들은 가입 당시 집값의 1.5%를 보증료로 낸다. 3년이 지나 연금을 해지할 경우 보증료 전액을 돌려받을 수 없다. 한 번 해지한 연금은 3년간 재가입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다. 이후 다시 연금에 들더라도 보증료를 재차 납부해야 한다.

연금 가입 후 불어난 집값은 연금 수령자가 사망할 경우 자식에게 상속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주택연금은 부부 모두가 사망한 뒤 정산한다. 사망 시 주택가격과 그동안 받은 연금액을 비교해 차액을 자녀 등에게 상속한다.

집값이 내려갈 때를 감안하면 불리한 구조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주택연금액 산출의 주요 변수는 이자율, 주택가격 상승률, 사망률 등으로 지급하는 연금에 이미 일정 수준의 집값 상승률이 반영돼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 주택연금

고령층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자신이 소유하고 거주 중인 주택을 담보로 내 집에 살면서 평생 일정 금액을 매달 연금 방식으로 받는 금융상품.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