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분당구 일대 전경.  /사진=임형택 기자
성남시 분당구 일대 전경. /사진=임형택 기자
"성남시가 선도지구 가점이란 '독이 든 성배'를 만든 겁니다. 기준용적률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가점을 신청했다간 향후 재건축 사업 진행이 안 될 수 있는 위험에도 주민들 사이 우선 선도지구부터 되자는 목소리가 높으니 다들 검토하고 있습니다."

분당의 한 통합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의 말입니다. 1기 신도시 분당에서 1호 재건축 단지를 뽑는 선도지구 경쟁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선도지구 경쟁에 매몰돼 스스로 사업성을 훼손하고, 재건축에 어려움을 겪는 단지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분당신도시 선도지구 경쟁 치열…'동의율 90%' 증가 추세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1기 신도시 관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닷새간 선도지구 신청을 받습니다. 신청서 접수 전까지 높은 점수를 확보해야 하는 통합재건축 추진위원회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습니다. 동의율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고, 가장 치열한 경쟁이 진행 중인 분당에서는 90%를 넘긴 단지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분당에서는 서현동 시범현대·우성, 이매동 아름마을 건영·태영·한성·두산삼호, 분당동 샛별마을 동성·라이프·삼부·우방 등이 90%대 동의율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분당에서는 최대 1만2000가구를 선도지구로 지정할 예정인데, 가장 비중이 큰 주민 동의는 95%를 넘겨야 만점(60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정주환경 개선의 시급성',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 '정비사업 추진의 파급효과' 등을 따지게 됩니다. 공모 당시만 하더라도 같은 시기에 지어진 만큼 정주환경 등의 조건에 차이가 크지 않아 동의율이 선도지구 결정을 가를 요소로 꼽혔습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시범 아파트 일대 전경.  /사진=임형택 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시범 아파트 일대 전경. /사진=임형택 기자
하지만 예상보다 뜨거운 열기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이미 90%를 넘긴 일부 단지 외에도 대부분이 90%에 근접하면서 동의율 변별력이 낮아져 어느 단지도 선도지구 지정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한 추진위 관계자는 "초기만 하더라도 동의율이 80%대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재건축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 이대로면 대부분 단지가 90%대 동의율을 확보하고, 단지 간 점수 차도 0.5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습니다

선도지구 점수 차 뒤집을 방법…추가 기부채납 대두

분당 주민들 사이에서는 선도지구에서 탈락하면 재건축이 기약 없이 밀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퍼져 있습니다. 정부는 매년 일정한 물량을 선정해 순차적으로 재건축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정권이 바뀌고 정책 기조가 틀어지면 후발주자들은 삽도 뜨지 못할 것이라는 게 주민의 걱정입니다. 따라서 이번 정권 내에 착공하는 선도지구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똑같이 낡은 아파트인데 내가 사는 단지는 0.5점 차이로 선도지구 경쟁에 탈락해 재건축이 어려워지고, 길 건너 있는 단지는 선도지구에 이름을 올려 공사가 시작된다면 분통이 터지는 일일 겁니다. 여기서 성남시는 부족한 점수를 한 번에 역전시킬 묘안을 내놨습니다. 배점 15점인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에 가점 항목을 넣은 것입니다.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에는 공공기여 추가제공(1~6점), 이주대책 지원(1~2점), 장수명 주택 인증(1~3점) 등 가점이 붙는 항목이 있습니다. 공공기여 추가제공은 기본 공공기여에 추가로 부지면적의 1%를 기부채납하면 1점을 주고, 5%를 기부채납하면 6점을 주는 항목입니다. 이주대책 지원과 장수명 주택 인증도 조건에 따라 점수를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경기 성남시청에서 '분당신도시 선도지구 선정 공모지침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6월 경기 성남시청에서 '분당신도시 선도지구 선정 공모지침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부채납 약속 등으로 가점을 받으면 1점이 채 되지 않는 동의율 점수 차를 한 번에 뒤집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내부 집계에서 점수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일부 추진위에서는 가점 활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단 선도지구가 돼야 한다'는 주민들의 열망 때문입니다. 점수가 높은 일부 단지들도 이러한 우려에 추가 기부채납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점을 신청할 경우 재건축 사업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성남시는 아직 재건축 기본계획안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기준 용적률이 얼마가 될지, 기본 공공 기여율이 얼마나 될지 아직 모르는 상태입니다. 전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기부채납 등을 결정했다가는 선도지구가 되어도 정작 재건축을 못 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깜깜이 기부채납, 사업성 훼손해 재건축 어려워질 것"

한 추진위 관계자는 "기본 공공 기여율이 10%이고 거기에 추가 기부채납 5%를 한다면 15%가 되지만, 기본 공공기여율 15%에 5%를 추가하면 20%"라며 "'깜깜이 상태'에서 기부채납부터 하라는 이야기는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렇게 선도지구가 되더라도 향후 분담금이 구체화했을 때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며 "추가 기부채납으로 인해 조합원이 추가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이 1인당 1억원을 넘는다면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다른 추진위 관계자도 "사업성을 생각하면 선도지구 탈락을 감수하더라도 추가 기부채납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면서도 "가점을 포기해 선도지구에서 탈락하면 재건축이 기약 없이 밀리고, 가점받아 선도지구가 되면 사업성 때문에 재건축이 어려워지는 형국"이라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1기 신도시 가구 수가 늘어나는 만큼 기반 시설이 부족해진다. 분당의 경우에는 특히 교통체증에 대한 우려가 크기에 기부채납을 통한 도로 확충이 필요하다"면서도 "재건축이 본격화한 다음에 분쟁이 벌어지면 사업은 기약 없이 밀린다. 선도지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하려면 추후 분쟁 가능성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