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삼호 전남 영암 조선소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에 연료 탱크가 장착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제공
HD현대삼호 전남 영암 조선소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에 연료 탱크가 장착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제공
새로 건조하는 선박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각종 규제에 따라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데다 20~25년 주기의 선박 교체 시기가 맞물린 결과다. 배값이 직전 ‘슈퍼사이클’인 2005~2008년을 넘어 연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골랐다 하면 3000억" 역대급 호황…한국 '잭팟' 터졌다
10일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신(新)조선가 지수’(새로 건조하는 선박 가격을 지수화한 것)는 지난 6일 189.7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인 2008년 9월(191.6) 후 16년 만에 가장 높다. 신조선가 지수는 2008년 9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다가 2021년 상승세로 돌아섰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내 192를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슈퍼사이클은 친환경 선박이 이끌고 있다. 17만4000㎥짜리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건조 가격은 지난달 말 척당 2억6200만달러(약 3500억원)로 2020년 12월(1억8600만달러)보다 40.9% 올랐다. 글로벌 해운사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지키기 위해 LNG, 메탄올, 수소 등을 연료로 쓰는 친환경 선박을 잇달아 발주한 덕분이다.

컨테이너선 가격도 고공행진 중이다. 1만5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가격은 척당 2억200만달러로 4년 전보다 90.5% 뛰었다.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3사는 모처럼 웃고 있다. 증권사들은 HD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영업이익이 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도 각각 4619억원, 209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선 빅3’의 합산 영업이익이 2조원을 넘기는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업계 관계자는 “빅3 모두 3년치 일감을 확보한 데다 가동률도 100%를 넘은 만큼 공급 부족 현상이 3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빅3, 독에 3년치 일감 쌓여…이젠 비싼 배 골라서 수주한다
K조선 르네상스…원조 '달러박스'의 귀환

반도체처럼 조선도 경기를 타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직전 ‘슈퍼사이클’은 2005~2008년이었다. 글로벌 경기가 좋았던 데다 ‘세계화 물결’에 물동량이 대폭 늘자 선사들은 경쟁적으로 배를 발주했다. 조선업은 ‘달러박스’로 불렸고, HD현대중공업 등 조선업체들은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자 신규 발주는 확 쪼그라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불황은 10년 넘게 지속됐다. 배값이 오르기 시작한 건 2021년부터다. 오랜 기간 새 배를 들이지 않은 선사들이 경기 회복 신호를 읽고 일제히 신규 발주에 나선 덕분이다. 업계에선 10여 년 만에 돌아온 이번 슈퍼사이클이 과거보다 오래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물동량이 줄더라도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는 꾸준하다는 이유에서다.

조선 3사, 이익 수직상승

통상 조선사는 수주잔량 마지노선을 2년으로 잡는다. 배를 주문받고 인도하는 데 2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2년치 일감을 갖고 있어야 독을 놀리지 않는다.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3사가 현재 쌓아둔 수주잔량은 3년~3년6개월치에 달한다.

독(dock·선박 건조장)이 가득 차면 조선사 이익은 확 늘어난다. 비싼 배만 골라잡는 ‘선별 수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최근 들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암모니아 운반선(VLAC)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힘을 쏟는 이유다. 17만4000㎥ LNG 운반선 가격은 2020년 말 척당 1억8600만달러에서 지난달 2억6200만달러로 40.9% 뛰었다.
"골랐다 하면 3000억" 역대급 호황…한국 '잭팟' 터졌다
독 부족 현상은 평범한 선박인 컨테이너선 가격도 끌어올리고 있다. 1만5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 가격은 2020년 12월 1억600만달러에서 지난달 2억200만달러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컨테이너선은 중국의 저가 공세로 돈 벌기 힘든 선박이었지만 배값이 오르자 한국 조선사들도 수주전에 뛰어들고 있다.

‘불황의 터널’을 뚫고 나온 조선 3사의 이익은 수직상승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1년 1조4000억원 영업손실을 냈지만, 지난해 흑자를 낸 데 이어 올해는 1조3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중공업의 올해 이익 전망치도 4619억원으로 지난해의 두 배에 육박한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1965억원 적자에서 올해 2100억원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됐다. 과거 ‘저가 수주’한 선박 대부분을 선사에 넘긴 만큼 앞으로 만드는 배는 죄다 비싼 선박뿐이다.

‘공급자 우위’로 시장이 바뀌면서 조선사가 ‘표준 방식’으로 선사와 계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기존엔 조선사가 선박을 인도할 때 잔금 50%를 받는 ‘헤비 테일’ 방식이 많았지만, 최근엔 계약 시점부터 건조 단계에 따라 20%씩 받는 표준 계약이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조선사 재무구조는 좋아진다.

중고선가도 가파르게 상승

향후 신조선가지수를 가늠할 수 있는 선행 지표는 폐선 스크랩(고철) 가격, 중고선가지수다. 선박은 통상 20~25년 운항하는데, 고철 가격이 오르면 예정보다 일찍 배를 팔아넘기고 새 배를 주문한다. 중고선 가격이 높을 때도 마찬가지다.

최근 경기 둔화, 철강 수요 감소로 고철 가격은 하향세지만 중고선가지수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9월 중고선가지수는 182.30으로 지난해 11월(148.27)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해상 운임이 상승하자 중고선을 운항해 돈을 벌려는 선사가 늘었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 유조선(VLCC), 탱커는 재판매 과정에서 프리미엄이 12~13% 붙어 거래된다. 한 해운사가 주문한 배를 받기 전에 다른 해운사가 이 선박을 사고 싶다고 요청하는 경우다. 1만5500TEU 중고 컨테이너선 가격은 신조선가(척당 2억달러가량)의 80%까지 뛰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이달 기준으로 전 세계 선박 가운데 친환경 이중연료 엔진을 장착한 배는 7%에 불과했다. 앞으로 해운사들이 노후 선박을 폐선하고 LNG 또는 메탄올 이중연료 엔진을 단 신규 선박을 잇따라 발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2030년 해운사의 탄소 배출량을 2008년 대비 20% 이상 감축하라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에 맞추기 위해서다. IMO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각국 항만에서 입항을 거부하기 때문에 사실상 장사를 못 한다.

김형규/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