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관련 보증이 5년 새 50조원가량 급증했다. 높은 보증 비율(90~100%) 때문에 은행이 대출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내줘서다. 한국 경제가 ‘보증의 덫’에 빠져 빚에 포위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금난 기업도 정부가 '전액보증'…혈세로 빚탕감 악순환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용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 기술보증기금 등 3대 보증기관의 중소기업 대출 보증 잔액은 작년 말 134조3000억원으로 5년 새 46조3000억원(1.4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도 330조원 늘어 잔액이 1000조원에 달했다.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대출 상품의 보증 비율은 대부분 90%를 웃돈다. 은행이 1억원을 대출해준 뒤 부실이 발생해도 9000만원 이상은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준다는 얘기다.

정부는 75~85%이던 기존 보증 비율을 코로나19 시기에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목적이었지만 기업 부채 폭증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출실적·상환능력 없는 기업도 보증만 갖추면 은행서 쉽게 대출
신보, 전액 보증 비율 22% 달해

기업대출 보증 규모가 5년 만에 50조원 가까이 급증한 것은 정부가 코로나19 등 위기 때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에 보증서를 마구 내줬기 때문이다. 은행에 대출 상환을 보증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 많은 돈을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보증 남발이 낳은 ‘도덕적 해이’가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은행권은 빚을 대신 갚아달라는 ‘조 단위 청구서’를 보증기관에 들이민 상황이다.

지역신보 보증 두 배 급증

10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규모는 61조8000억원으로 5년 전보다 16조3000억원(35.8%) 늘었다. 신보의 보증 규모가 대폭 커진 것은 보증 비율이 높아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신보의 평균 보증 비율은 90.4%로 2019년(88.0%)보다 2.4%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코로나19 이전 정부의 자체 기준(75~85%)을 훨씬 웃돈다.

보증 비율이 높아지면서 은행들은 쉽게 대출을 내줬다. 부실이 발생해도 해당 비율만큼 신보에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보에선 차주가 돈을 한 푼도 갚지 않아도 전액 받을 수 있는 100% 보증이 전체의 22.4%에 달했다. 1년간 수출 실적이 없어도 준비 상황만 평가받으면 되는 ‘수출희망기업 특례 보증’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 규모는 더 큰 폭으로 늘어났다. 작년 말 기준 44조6000억원으로 5년 전(20조5000억원)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금융기관인 지역신보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을 보증하는 게 주요 업무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조치 등으로 폐업에 내몰린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신보 보증을 활용했다. 지역신보의 보증 비율도 통상 90% 이상이다.

대신 갚아준 돈 ‘세 배’


보증이 대폭 확대되면서 부실 규모도 많이 늘어났다. 정부가 내건 요건만 갖추면 상환능력이 충분하지 않아도 보증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례 보증 대출은 민간 대출상품보다 정부 복지에 가깝다”며 “부실이 나도 돈을 받을 수 있어 면밀하게 심사하는 사례가 드물다”고 했다.

대출받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제때 상환하지 않자 보증기관이 은행에 빚을 대신 갚고 있다. 지역신보의 재보증기구인 신용보증재단중앙회의 대위변제액은 작년 1조7126억원으로 2022년(5076억원)의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만 1조2218억원으로 연간 규모는 작년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신보의 대위변제액도 2022년 1조3600억원, 2023년 2조2758억원, 올해 상반기 1조4625억원으로 증가했다.

보증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티몬·위메프 사태로 판매자들이 피해를 보자 신보와 기업은행을 통해 3000억원 이상을 공급하기로 했다. 신보 지점에 특례 보증을 신청하면 보증 심사 후 기업은행에서 대출을 내주는 방식이다. 이 대출의 신보 보증 비율도 90%다.

정부 보증은 부실기업보단 유망 기업을 발굴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보 등의 보증은 유망하지만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부실기업의 대출을 보증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보증 비율을 70~80% 수준으로 낮추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부실 심사’가 만성화하면서 밀착형 금융회사를 표방한 지방은행, 상호금융 등의 역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보나 기보 등이 보증서를 발급해주기 때문에 은행은 실사는커녕 각 차주의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한종/강현우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