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피아노 연주한 파리올림픽, 특별한 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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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인터뷰
차이콥스키 콩쿠르 프랑스인 최초 우승자
10월 9일 피아노 리사이틀…브람스·리스트 등 조명
차이콥스키 콩쿠르 프랑스인 최초 우승자
10월 9일 피아노 리사이틀…브람스·리스트 등 조명
“빗속에서의 피아노 연주, 제게도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죠.”
지난 7월 26일 근대 올림픽 128년 역사상 최초로 야외, 그것도 센강을 무대로 진행된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홀로 피아노에 앉아 모리스 라벨의 ‘물의 유희’ 등을 연주하며 전 세계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27)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9일 밤 프랑스 현지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보안상의 이유로 6~7시간 정도를 갇혀 있어야 했고, 연주 전 15분 정도를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기에 이미 온몸은 흠뻑 젖은 상태였다”며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잔 생각으로 연주에 임했다”고 했다. “사실 라벨의 ‘물의 유희’란 작품을 햇볕 아래에서 연주했다면 이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를 얻진 못했을 텐데, 빗속에서 연주했기에 더욱 뜻깊은 무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가 자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20대의 젊은 피아니스트를 내세운 데엔 다 이유가 있다. 2019년 세계적 권위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프랑스인 최초의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쥔 데 이어 대회 전 부문 대상(大賞)인 ‘그랑프리’까지 휩쓴 상징적인 인물이라서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캉토로프가 한국을 찾는다. 다음 달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람스 두 개의 랩소디 중 1번,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번 ‘눈보라’, 리스트 ‘순례의 해’ 가운데 ‘스위스’의 여섯 번째 곡인 ‘오베르망의 골짜기’,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1번 등을 들려준다.
캉토로프는 “피아니스트에게 각기 다른 형태의 비르투오소 면모,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들”이라며 “한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기보단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그사이의 연결성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중에서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은 그의 남다른 실험 정신과 젊은 날의 창의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고, 연주자가 라흐마니노프와 마치 협업하고 있단 느낌을 준단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지금 내게 주어진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청중에게 최대한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작품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캉토로프는 프랑스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장자크 캉토로프는 오베르뉴 체임버 오케스트라,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지낸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이고, 어머니도 바이올린을 전공한 연주자다. 그에게 왜 바이올린이 아닌 피아노를 선택했냐고 묻자, “피아노가 바이올린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장난스럽게 답한 그는 이내 “두 악기 모두 배워봤지만, 나의 마음을 끄는 건 피아노뿐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성격이 급해서 뭐든지 빨리 배우고 바로 결과를 확인하는 걸 좋아하는데, 피아노는 건반을 누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소리 내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며 “시작은 쉬워도 하면 할수록 어려운 악기란 건 몸소 체험하고 있다”고 했다. “피아노로 노래하려면 페달 등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고, 테크닉적으로도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많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모님과 다른 악기를 전공해서 함께 실내악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하하.”
아버지처럼 지휘에도 관심이 있냐는 질문엔 “아직은 피아노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며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교향곡을 들을 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경외감, 놀라움을 일단은 계속 즐기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막 우승한 ‘신예’였지만, 이제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적 악단들과 협연하는 정상급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프란츠 리스트의 환생(미국 팡파르)”, “시적인 매력을 가지고 불을 내뿜는 거장(영국 그라모폰)” 등 해외 유명 클래식 전문지들이 연달아 극찬을 쏟아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좋은 평을 얻고, 연주자로서 훌륭한 수식어를 얻게 되는 건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난 그저 ‘진실한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캉토로프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 미하일 플레트네프 같은 대가들의 이름을 들면서 “영원히 내면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자신들의 감정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해 온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아왔다”며 “이들처럼 자신만의 느낌으로 곡을 재해석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표현하며, 음악적 본능을 깨우기 위해 계속 정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쏠린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을 증명하듯 캉토로프의 연주 일정은 내년까지 빼곡히 채워져 있다. LA 필하모닉(1월), 베를린 필하모닉(4월) 공연 등 굵직한 무대들을 앞두고 있다. 캉토로프는 “연습할 때 하나의 악보를 오래 연구하고, 실험적인 요소를 겁 없이 시도해 보면서 나만의 연주 방향을 찾는 편인데 바빠지면서는 이전처럼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피아노 앞에 앉아 홀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내겐 가장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했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피아니스트지만, 스웨덴 명문 음반사 BIS와 작업한 앨범들로 황금 디아파종상 등 국제적 권위의 음반상을 휩쓴 인물로도 유명한 캉토로프. 오는 11월에도 ‘브람스-슈베르트’란 명칭의 새 음반 발매가 예정돼 있다.
캉토로프는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를 중심으로 구성된 3부작 앨범의 마지막 음반”이라며 “머리와 가슴의 균형이 완벽했던 작곡가이자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브람스는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존재이기에 음반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브람스 특유의 멜랑꼴리한 감성과 탄탄한 음악적 구조, 그 내면에 숨겨진 메시지는 언제나 저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그의 음악을 깊게 파고들고자 하는 열망은 1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나도 도무지 사라질 것 같지 않아요.(웃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지난 7월 26일 근대 올림픽 128년 역사상 최초로 야외, 그것도 센강을 무대로 진행된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홀로 피아노에 앉아 모리스 라벨의 ‘물의 유희’ 등을 연주하며 전 세계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27)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9일 밤 프랑스 현지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보안상의 이유로 6~7시간 정도를 갇혀 있어야 했고, 연주 전 15분 정도를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기에 이미 온몸은 흠뻑 젖은 상태였다”며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잔 생각으로 연주에 임했다”고 했다. “사실 라벨의 ‘물의 유희’란 작품을 햇볕 아래에서 연주했다면 이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를 얻진 못했을 텐데, 빗속에서 연주했기에 더욱 뜻깊은 무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가 자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20대의 젊은 피아니스트를 내세운 데엔 다 이유가 있다. 2019년 세계적 권위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프랑스인 최초의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쥔 데 이어 대회 전 부문 대상(大賞)인 ‘그랑프리’까지 휩쓴 상징적인 인물이라서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캉토로프가 한국을 찾는다. 다음 달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람스 두 개의 랩소디 중 1번,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번 ‘눈보라’, 리스트 ‘순례의 해’ 가운데 ‘스위스’의 여섯 번째 곡인 ‘오베르망의 골짜기’,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1번 등을 들려준다.
캉토로프는 “피아니스트에게 각기 다른 형태의 비르투오소 면모,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들”이라며 “한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기보단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그사이의 연결성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중에서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은 그의 남다른 실험 정신과 젊은 날의 창의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고, 연주자가 라흐마니노프와 마치 협업하고 있단 느낌을 준단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지금 내게 주어진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청중에게 최대한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작품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캉토로프는 프랑스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장자크 캉토로프는 오베르뉴 체임버 오케스트라,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지낸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이고, 어머니도 바이올린을 전공한 연주자다. 그에게 왜 바이올린이 아닌 피아노를 선택했냐고 묻자, “피아노가 바이올린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장난스럽게 답한 그는 이내 “두 악기 모두 배워봤지만, 나의 마음을 끄는 건 피아노뿐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성격이 급해서 뭐든지 빨리 배우고 바로 결과를 확인하는 걸 좋아하는데, 피아노는 건반을 누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소리 내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며 “시작은 쉬워도 하면 할수록 어려운 악기란 건 몸소 체험하고 있다”고 했다. “피아노로 노래하려면 페달 등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고, 테크닉적으로도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많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모님과 다른 악기를 전공해서 함께 실내악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하하.”
아버지처럼 지휘에도 관심이 있냐는 질문엔 “아직은 피아노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며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교향곡을 들을 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경외감, 놀라움을 일단은 계속 즐기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막 우승한 ‘신예’였지만, 이제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적 악단들과 협연하는 정상급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프란츠 리스트의 환생(미국 팡파르)”, “시적인 매력을 가지고 불을 내뿜는 거장(영국 그라모폰)” 등 해외 유명 클래식 전문지들이 연달아 극찬을 쏟아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좋은 평을 얻고, 연주자로서 훌륭한 수식어를 얻게 되는 건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난 그저 ‘진실한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캉토로프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 미하일 플레트네프 같은 대가들의 이름을 들면서 “영원히 내면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자신들의 감정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해 온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아왔다”며 “이들처럼 자신만의 느낌으로 곡을 재해석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표현하며, 음악적 본능을 깨우기 위해 계속 정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쏠린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을 증명하듯 캉토로프의 연주 일정은 내년까지 빼곡히 채워져 있다. LA 필하모닉(1월), 베를린 필하모닉(4월) 공연 등 굵직한 무대들을 앞두고 있다. 캉토로프는 “연습할 때 하나의 악보를 오래 연구하고, 실험적인 요소를 겁 없이 시도해 보면서 나만의 연주 방향을 찾는 편인데 바빠지면서는 이전처럼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피아노 앞에 앉아 홀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내겐 가장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했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피아니스트지만, 스웨덴 명문 음반사 BIS와 작업한 앨범들로 황금 디아파종상 등 국제적 권위의 음반상을 휩쓴 인물로도 유명한 캉토로프. 오는 11월에도 ‘브람스-슈베르트’란 명칭의 새 음반 발매가 예정돼 있다.
캉토로프는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를 중심으로 구성된 3부작 앨범의 마지막 음반”이라며 “머리와 가슴의 균형이 완벽했던 작곡가이자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브람스는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존재이기에 음반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브람스 특유의 멜랑꼴리한 감성과 탄탄한 음악적 구조, 그 내면에 숨겨진 메시지는 언제나 저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그의 음악을 깊게 파고들고자 하는 열망은 1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나도 도무지 사라질 것 같지 않아요.(웃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