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혈세 130억 든 '숯가마 찜질방'…124억 추가 편성 논의 [혈세 누수 탐지기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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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억 들인 강원도 영월군 수피움
아이디어 공모전 했는데 접수 '0건'
리모델링 등 124억 사업 공모 예정
기존 사업 지우고 캠핑·요리 사업에
타당성 조사·콘텐츠 개발·홍보 필요↑
"경쟁력 없으면 또 혈세 낭비 초래"
아이디어 공모전 했는데 접수 '0건'
리모델링 등 124억 사업 공모 예정
기존 사업 지우고 캠핑·요리 사업에
타당성 조사·콘텐츠 개발·홍보 필요↑
"경쟁력 없으면 또 혈세 낭비 초래"
"주민들 의견은 듣지도 않고 그냥 지어놓고, 방치하고, 홍보도 안 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 놓으니까 '돈 빼먹으려고 짓는다'는 소리가 나오지!"
산세가 빼어난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선바위산 자락에는 마을 주민들의 '애물단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숯가마와 찜질방을 갖춘 치유센터 '수피움'입니다. 폐광지역인 상동읍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막대한 혈세를 들여 만든 이 수피움이 최근 '흉물'로 전락했다는 소식입니다.
군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국비와 지방비 등 약 130억원을 들여 지금의 수피움을 조성했습니다. 하지만 숯가마는 중국산 숯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적자만 내다 방치됐고, 타개책으로 꺼내든 치유센터 역시 홍보 부족과 코로나19 등 대내외적 요인이 겹치면서 문을 닫은 겁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철저한 사전 타당성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 팀이 직접 영월을 찾았습니다.
중국산에 진 시즌1…마케팅 안 해 실패한 시즌2
지난 9일 혈누탐팀이 찾은 수피움의 모태는 군이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10년 조성을 시작한 '숯 마을'입니다. 91억1000만원을 들여 2013년 2월 완공된 숯 마을은 전통 숯가마 30기, 대기오염방지시설 등을 갖추고 야심 차게 숯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산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이를 위탁 운영하던 지역 주민들은 6000만원에 달하는 적자만 떠안은 채 운영권을 포기했습니다.수십억 원을 들인 숯 마을을 그냥 방치할 수 없었던 군은 2016년 38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숯 치유센터'를 조성합니다. 찜질방, 숙박시설, 식당, 매점 등 부대시설을 갖춘 편의시설인데요. 숯가마와 편의시설을 연계하면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당시 군이 기대한 바였습니다. 이어 군은 마침내 2018년 위탁운영 사업자를 선정하는 데 성공했고, 이때 명칭도 '수피움'으로 바꿔 숯가마를 활용한 국내 최고 수준의 힐링 타운으로의 도약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수피움 또한 실패작이 됐습니다. 이곳은 수도권에서 차로 2~3시간 정도 걸립니다. 차가 없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태백 시내까지 가면, 마을 버스를 또 타고 30분을 간 후 1시간을 걸어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접근성도 좋지 않은 데다, 홍보·마케팅까지 부족했다는 게 실패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설상가상 코로나19까지 창궐하면서 2018년 5월부터 5년간의 위탁운영 계약을 맺은 수탁업체는 쌓이는 적자를 버티다 못해 2021년 말부터 휴업에 들어갔습니다. 이어 2023년 3월 군에 '민간 위탁 포기 의사'를 표명하고 맙니다. 수피움 근처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코로나19 전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 적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그러게 관리를 잘했어야지"
그렇게 지금까지 3년 가까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는 수피움. 혈누탐팀이 방문한 날은 햇볕이 쨍쨍했는데도, '음산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혈누탐팀을 제외하면 차 한 대, 사람 한 명 없었습니다. 웅장한 산세 속 2만9608㎡에 달하는 부지 위에 윤기를 잃어버린 회색 콘크리트 건물은 곳곳이 칠이 벗겨진 모습이었습니다. 여러 시설물의 입구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붙어있었습니다. 건물 출입문이나 계단에는 거미줄과 벌레 사체들이 가득했습니다. 숯이 되지 못한 참나무들도 곳곳에 쌓여있었습니다. 자연경관이 아까울 지경이었습니다. 시원하게 흐르는 선바위산의 계곡도 건물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있어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민들은 수피움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지 궁금했습니다. 수피움 찜질방 가격이 인근 주민에는 타지역 주민의 절반인 5000원에 불과했는데도 한 번도 이곳을 가본 적이 없다는 어르신이 수두룩했습니다. 상동읍의 한 경로당 앞에 모여있는 어르신들에게 찾아가 여쭤봤습니다. 지역 토박이라는 한 어르신은 "그러게 관리를 잘했어야지. 우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한 번을 오라고 한 적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다른 어르신은 '수피움이 애물단지 같다는 말이 나온다'는 기자의 말에 "애물단지 같은 게 아니라 애물단지, 무용지물"이라며 "2018년 초장에만 잠깐 사람들이 오곤 그 뒤로 아무도 안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오면 옥수수라도 좀 내다 팔 텐데"라고 한숨을 내쉰 어르신도 계셨습니다
아이디어 접수는 '0건'
주인도, 길도 잃어버린 수피움. 군은 2023년 10월 특단의 대책을 세웁니다. 바로 총 20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수피움 시설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건축사법에 따른 건축사 자격 소지자(건축사사무소 등록)를 가진 이들로부터 공모전의 주제에 맞는 창의적으로 진행할 개별 '마스터플랜'을 제출하라고 안내했지만, 접수는 0건이었습니다. 1건의 접수가 들어오긴 했지만, 필수 제출 서류를 내지 않아 반려했다고 합니다. 민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군은 수피움의 실패에 대해 어떻게 진단 내리고 있을지 물어봤습니다. 군청 관계자는 "과거 사업을 계획했을 땐 채산성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사업비를 신청했던 것 같은데, 몇년이 지나니 숯이 판매도 안 되고, 운용비도 올라가고, 중국산에 가격 경쟁력도 밀리는 등 운영이 안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군도 다음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아예 새로운 시설로의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군청 관계자는 "민간 위탁은 이제 안 되는 만큼, 기존 시설은 운영을 안 하고 리모델링해서 캠핑을 비롯해 장독대 분양 및 장류 등 로컬 요리 사업 쪽으로 운영해볼 수 있도록 내년 3~4월 접수 예정인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에 신청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시즌3에 혈세 124억원?
군은 지난해에도 같은 공모사업에 신청했지만, 선정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군이 계획하고 있는 리모델링 사업에 투입할 예정인 예산은 국비 50억원, 도비 10억원, 군비 50억원, 민간 14억원 등 총 124억원 규모입니다.전문가들은 벌써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리모델링에 너무 과한 혈세가 또 투입되는 데다, 로컬 요리 사업을 하겠다는 발상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차라리 최근 '템플스테이'나 '디지털 디톡스'가 인기인 점을 감안하면 또 과도한 혈세 낭비를 하지 말고 기존에 있는 시설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이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인근에 태백산 국립공원, 하이원리조트·오투리조트 스키장이 차량으로 30~40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봄~가을에는 등산객을, 겨울에는 겨울 스포츠족을 잡을 수도 있겠습니다. 등산이나 스키 한 번 타고 와서 개운하게 찜질방에서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을 끌 수 있는 내부 프로그램 개발과 홍보, 인근 인프라와의 연계입니다. 결국 관건은 한마디로 '콘텐츠'입니다.
특히 저번처럼 만들어놓고 홍보는 손을 놓으면, 어떤 것을 만들어도 또 애물단지로 전락할 우려가 큽니다. 이미 강원에 좋은 관광 상품이 많은 만큼, 경쟁력을 갖춘 사업이 아니면 애당초 다시 시작도 안 하는 게 낫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주민들 의견을 포함해 민간에서도 충분히 자문을 받아야 한다"면서 "인근에 수준 높은 리조트나 관광 시설이 많기 때문에 그 정도 수준에 맞출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또 세금만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지금 지자체가 검토 중인 캠핑, 장독대, 로컬 요리를 위해 수도권이나 인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갈지 철저한 계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시즌3를 맞이하는 수피움이 이번에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군이 앞으로 좀 잘 바꾸고, 사람들도 많이 오게끔 기사 좀 잘 써줘." 인근 마을의 한 어르신의 부탁이 아직도 머리를 맴돕니다. 주민들을 이미 2번 울린 지자체가 이제는 그들의 호소에 답해야 할 때입니다.
홍민성/신현보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