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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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제은행(BIS)이 한국의 민간부문 부채가 성장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직격했다. 과거엔 부채로 창출한 신용이 투자로 이어지면서 성장에 기여했지만 최근엔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BIS가 최근 발표한 '20년 간의 금리 하락을 고려한 신흥국의 신용 및 자원 배분' 보고서에서 라이언 바네르지 BIS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이 분석했다. BIS는 2000년대 초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하면서 대부분 신흥국에서 민간신용이 큰 폭으로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민간신용은 기업과 가계 등의 부채를 의미한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국에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2000년 이후 1.3배 이상 올랐고, 중국에서는 이 비율이 2배 가까이 상승했다.

BIS는 민간신용이 성장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짚었다. 자금 조달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실물자산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긍정적인 영향은 줄어들고 부정적 영향이 확대된다. 부채와 성장의 관계가 알파벳 U를 뒤집어 놓은 '역 U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예컨대 빚을 내서 소비를 늘리면 단기적으로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채 상환과 이자 지급 부담 때문에 미래 성장 잠재력이 약화할 수 있다.

BIS는 "대부분의 신흥국은 아직 민간신용 증가가 성장을 촉진하는 영역에 있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성장을 저해하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다다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국가로 지목한 것이 한국과 중국이다. BIS는 "한국과 중국의 경우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100%를 웃돌면서 경제성장률도 정점을 찍었다"며 "역 U자형 곡선과 일치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해 말 222.7%(BIS 기준)에 달해 100% 선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다. 이 중 가계부채가 100.5%, 기업부채가 122.3%였다. 다만 최근 GDP 기준년 개편을 반영한 한국은행 통계 기준으로는 올 1분기 말 민간신용 비율은 204.4%로 집계됐다.

BIS는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주택 수요가 늘면서 제조업 등에서 건설·부동산업으로 신용이 옮겨가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건설·부동산업의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해당 업종에 대한 과도한 대출 쏠림이 성장에 또 다른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실제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 비중이 더 많이 증가한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과 노동생산성 감소는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이런 신용 재배분은 과잉 투자를 의미할 수 있으며 이는 나중에 관련 대출 증가가 둔화한 뒤에도 생산성과 성장에 지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BIS는 분석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면서 "금융안정도 고려해야하지만 자원의 배분이라는 관점도 있다"고 짚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돈이 몰리고,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을 부양해야하는 고리를 끊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경제의 장기적 발전 방향을 볼 때 부동산 가격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