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미술가’란 색안경 빼고 본 거장의 예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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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트로켈: 드로잉, 오브제, 비디오’
성곡미술관에서 10월 27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10월 27일까지

하지만 이런 ‘여성’을 앞세운 명성은 트로켈이 쌓아온 예술세계 안에선 무의미한 수식어일 뿐이다. 물론 그가 남성이 주도권을 쥔 미술계에 도전하는 작업 활동을 해 온 것은 맞지만, 독창적인 개념과 폭넓은 예술 스펙트럼의 결과물들은 성별의 틀로 규정할 순 없다. 서울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로즈마리 트로켈: 드로잉, 오브제, 비디오’를 제대로 눈에 담으려면, 트로켈을 깊게 연구한 프리랜서 큐레이터 얀 팬후이즌의 이 한마디를 기억하면 좋다. “트로켈은 자신의 작품이 ‘젠더’라는 렌즈를 통해 해석되지 않길 바랐어요.”

기성 미술의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품은 ‘그림 그리는 기계’다. 회화도, 조각도 아닌 이 작품은 56개의 붓이 장착된 그림 그리는 기계다. 각각의 붓은 마틴 키펜베르거, 바바라 크루거, 게오르그 바젤리츠, 신디 셔먼 같은 예술계 거장들의 머리카락 다발로 만들어졌다. 천재적 솜씨를 가진 예술가의 고유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머리카락이 독창성보단 대량 생산의 의미가 강한 자동 그림 생산 기계에 달렸다는 점이 화가라는 관념에 물음표를 던진다.

기성 미술 제도와 보수적인 사회규범, 고정관념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은 트로켈의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이다. 트로켈의 작품이 페미니즘 미술이라 여겨지는 것도, 남성 중심의 질서를 깨기 위한 비판적 대안으로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전시에 나온 ‘편물 회화’는 예술계가 가장 하찮게 여기던 값싼 소재로 여성들이 주로 다루던 양모로 만들었다. 뛰어난 작품은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발상으로, 예술적 재료나 매체에 대해 미술계와 관객이 갖는 고정관념을 지적한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