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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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전략으로 ‘배짱영업’을 하던 해외 명품브랜드들이 판매가를 잇달아 내리고 있다.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비싼 명품 브랜드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업체들이 국내시장에서 가격 인하에 나선 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12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국내 가격을 최근 20% 안팎으로 인하했다. 버버리의 인기 제품 중 하나인 나이트 백 미디엄 사이즈의 한국 가격은 기존 459만원에서 385만원으로 74만원 내려갔다. 같은 디자인의 스몰 사이즈 가격은 425만원에서 349만원으로 76만원 떨어졌다.

업계에 따르면 버버리는 당분간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해진다. 버버리는 최근 매출이 급감하자 마이클 코어스와 코치를 이끌었던 조슈아 슐먼을 새 CEO로 임명했다. 비교적 버버리에 비해 저렴한 가격대의 명품 브랜드를 이끌었던 슐먼 CEO를 영입한 것은 더 넓은 고객층을 겨냥하기 위한 조치다. 그동안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 전략을 펼쳐 왔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자 전략을 수정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프랑스 명품업체 케링그룹에서도 브랜드 가격을 인하하는 추세다. 생로랑은 국내 가격을 3~15%가량 인하했다. 생로랑 루루백 미디엄 사이즈는 439만원에서 389만원으로, 스몰 사이즈는 405만원에서 355만원으로 각각 낮췄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명품 브랜드들의 인하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수년 간 고공행진하던 명품 값이 떨어지고 있는 데에는 최근 들어 명품 업체의 성장세가 둔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3고’(고금리·고환율·고유가) 여파가 소비자 지갑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데다 그나마 소비 수요가 엔화가 저렴한 일본 등의 여행으로 대체되는 모습이라는 분석이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명품 업체들이 코로나 기간 호황기를 맞으면서 터무니없이 가격을 많이 올렸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며 “비싼 가격에 발길을 돌리는 중산층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특히 미들급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인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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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동안 명품 시장 호황을 이끌던 ‘보복 소비’는 완전히 끝난 모습이다. 백화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명품 매출 신장률은 모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신세계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도 안 되는 0.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롯데·현대백화점의 경우에도 각각 5%대 오르는 데 그쳤다.

물가 상승률과 판매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역성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에 명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2021년 30~40%, 2022년 20%대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수요 증가세가 확 꺾인 모습이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