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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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우리나라 몫으로 사실상 배정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 후보 선임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현직 1급 간부와 금융위원회 전직 1급 간부가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다만 AIIB 설립 주도국인 중국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뜻하지 않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2일 기재부와 금융위에 따르면 정부는 AIIB 후임 부총재 국제공모에 조만간 최종 후보자를 추천할 예정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총 5명의 AIIB 부총재 중 올해 하반기 3명의 임기가 끝난다”며 “지분율이 다섯 번째로 많은 우리나라에서 부총재직을 수임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AIIB 부총재직을 맡게 되면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2016년 출범한 AIIB는 중국이 주도한 국제금융기구다.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설립됐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 주도하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이 설립을 주도했다. 현재 100여개국의 회원국을 두고 있다.

한국은 AIIB에 7억5000만 달러(약 1조원)를 출자했다. 지분율은 3.8%로 다섯 번째로 많다. 중국이 30.7%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며, 이어 인도(8.6%), 러시아(6.7%), 독일(4.6%) 순이다. 이 때문에 출범 당시 초대 부총재 한 자리를 한국 몫으로 배정받았다. AIIB는 총재 1명과 부총재직 5명을 두고 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2016년 6월 AIIB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를 겸직하는 부총재로 선임됐다. 하지만 홍 전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관련 논란에 휩싸이며 돌연 휴직계를 냈고, AIIB는 같은 해 12월 홍 전 회장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어 8년간 부총재직은 다른 나라의 몫으로 배정됐다.

정부는 그동안 회원국 중 지분율이 다섯 번째로 많은 우리나라에 부총재직이 다시 배정돼야 한다고 지속해서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6월에는 제주에서 AIIB 2차 연차총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5명의 부총재 중 올 하반기에 3명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우리 몫으로 부총재직이 사실상 배정됐다는 것이 정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임기가 끝나는 부총재 3명의 국적은 독일과 영국, 인도네시아다.

부총재직은 국제공모를 거친 후 AIIB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정부 안팎에선 벌써부터 추천 후보를 놓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기재부 현직 1급 간부인 K씨와 금융위 전직 1급 간부인 C씨 등 두 명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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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시 37회인 K씨는 최초의 행시 출신 여성 사무관이자 기재부 첫 여성 과장 및 부이사관·국장·실장 등 ‘최초’ 수식어가 따라붙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행시 35회인 C씨는 재정경제부(현 기재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가 출범한 후 자리를 옮겨 금융정책국장, 상임위원 등 요직을 지냈다. 최근엔 한 아시아 국가 대사직을 역임했다.

기재부와 금융위에선 부총재직 선임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기재부에선 K씨가 부총재에 선임될 경우 현직 1급들의 연쇄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사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는 기재부 출신이 사실상 국제기구 이사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자리만큼은 가져와야 한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두 명 모두 풍부한 국제금융 경력과 외교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누가 되든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부총재직 선임에도 AIIB 최대 주주인 중국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최대 변수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