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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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직원 중 두 명이 상습적으로 당일 아침에 연차를 쓰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합니다. 학원 강의 빠지듯 합니다. 전에 없던 일이라 다른 직원들 눈치도 보이고 대처 방법을 몰라 당황스럽습니다."

최근 인사담당자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고민글이다. 얼마 전엔 비가 온다는 이유로 당일 아침에 연차 쓰는 직원을 어떻게 해야하냐는 고민글이 화제가 됐다.

근로자의 연차휴가 '시기 지정권'의 행사 방식을 두고 실무적으로 분쟁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2일엔 국내 최대 마트 체인인 홈플러스의 순천 지점에서 9명의 직원이 연차 사용 하루 전에 연차 신청서를 집단으로 제출해 회사에 연차휴가 시기 변경권을 인정할 수 있을 지를 두고 논란이 된 바 있다.

연차휴가 신청 시기 관련 규정 없어...근로자 마음대로?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즉 연차휴가 '시기 지정권'은 근로자에게 있는 게 원칙이다. 다만 사용자는 근로자가 신청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에 한해 '시기 변경권'을 갖는다.

근로자가 이 '시기 지정권'을 행사할 때 '사전 신청'과 관련해 실무적으로 분쟁이 많이 발생한다. '사전'을 언제까지로 봐야 하는지가 주로 관건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연차를 신청하면 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다만 과거 하급심에서는 "직전 영업일에 연차휴가를 신청하는 것이 올바르진 않더라도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판시한 경우도 있다. 대기발령 중인 직원이 당일 팀장에게 유선으로 일방적으로 고지하고 연차휴가를 쓴 경우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며 징계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본 사례도 있다(2017구합54210).

반면 회사가 취업규칙이나 내규 등을 통해 '사전 신청'이나 '사용자의 승인' 규정을 둔 경우에는 다르게 판단한 경우도 있다.

과거 대법원은 사용자의 연차휴가 승인 규정을 어기고 승인 없이 일방적으로 연차 신청을 한 후 출근하지 않은 경우 '무단결근'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92다7542). 법원은 해당 취업규칙을 "사용자에게 주어진 시기 변경권을 적절하게 행사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봤다. 또 회사와 다투고 출발 20분 전 연차 신청서를 관리자 책상 위에 올려두고 퇴근한 버스 기사를 해고한 사례에서는 "3일 전까지 회사에 사용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취업규칙에 어긋났다"며 징계 사유가 된다고 본 하급심 판결도 있다(2020구합50225).

전문가들은 회사 '취업규칙' 등에 연차사용 신청 절차를 사전에 세부적으로 정해놓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다만 관련 규정이 연차휴가 사용을 통제할 목적이거나 사회통념을 넘어서 과도한 경우(무조건 한 달 전 신청, 승인 없이는 사용 불가 등)라면 해당 규칙이 시기 지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만약 절차에 따라 신청을 했는데도 묵묵부답하는 방식으로 거부를 했다면 승인 등이 없더라도 근로자가 연차를 쓸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루 전에 9명 집단 연차 신청한 홈플러스 '발칵'

앞서 언급했듯 근로자의 연차 휴가 사용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 사업주의 '시기 변경권'이 인정된다. 다만 '막대한 지장'의 의미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법원은 기업의 규모·업무량 등을 고려해 '상당한 영업상 불이익이 있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시기변경권 행사와 관련해 홈플러스에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14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 지부는 홈플러스와 연차휴가 사용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직원 9명이 연차 사용일 바로 전날 집단으로 휴가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갈등의 발단은 지난달 21일이었다. 홈플러스 순천점 조합원 9명은 "22일(내일) 연차를 쓰겠다"며 하루 전인 21일 회사에 통보했다. 다른 직원 2명은 보건휴가(생리휴가) 사용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집단으로 휴가를 쓰겠다고 나선 것은 홈플러스 노조가 서울 종로에서 개최한 상경 투쟁(22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점장은 21일 퇴근 전 직원들을 모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힘들게 하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상식선에서 타당하다면 (연차를) 인정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단결근 처리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22일 집단 결근했다. 해당일 마트 근무 예정 인원은 16명이었는데 절반 이상이 빠졌다는 게 회사의 주장이다. 회사는 예고대로 이들을 무단결근 처리하고 경고장을 발부했다.

노조는 지난 5일 회사에 공문을 보내 무단결근 처리를 철회하고 조처를 내린 결정권자를 벌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노조에 공문을 보내 "9명이 연차 휴가를 요구해 휴가를 부여할 경우 인력 공백으로 정상적 매장 운영을 할 수 없다"며 "갑작스러운 집단 연차휴가 신청에 대해 기존 스케줄 대로 출근을 요청한 것은 근로기준법 등에 따른 적법한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의 행사"라고 반박했다. 특히 8월은 홈플러스 여름 행사가 진행되면서 한 달 전부터 근로자와 협의를 통해 사전 근무스케줄을 세부적으로 짰다고 덧붙였다.

이 경우 앞서 본 판례의 해석대로라면 회사가 당일 근로자 다수가 업무에서 빠져 운영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라는 점을 입증한다면 '시기변경권' 행사가 가능할 수도 있다. 만약 회사 내규에 연차사용과 관련한 절차 규정이 있고, 근로자들이 이를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용 고지를 했다면 회사의 무단결근 처리와 징계에 법적 문제가 없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더 나아가 홈플러스 사례처럼 조합활동을 위해 집단 연차 휴가를 내는 것은 '쟁의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지난 6월 삼성전자 노조가 집단으로 연휴에 연차를 사용하는 '연차투쟁'을 벌인 것도 같은 차원이다. 삼성전자 노조의 경우 이미 조정 절차를 거쳐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여서 관련된 위법 시비는 발생하지 않았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