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 혈투’ 후 재회한 해리스·트럼프 >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9·11테러 23주년 추모식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 ‘토론 혈투’ 후 재회한 해리스·트럼프 >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9·11테러 23주년 추모식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의 TV 대선 토론에서 ‘판정패’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토론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의 귀걸이에 대한 음모론까지 퍼지고 있다.

○트럼프 “토론 조작돼”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전화로 출연해 토론을 주최한 ABC뉴스가 자신의 발언은 바로잡고 해리스 부통령의 발언은 견제하지 않았다며 “조작됐다(rigged)”고 말했다. 그는 2020년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썼다.

그는 “그들(ABC방송)은 가장 부정직한 언론”이라며 “방송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해리스가 말하는 것을 봤는데 끔찍하게 질문에 익숙해 보였다”며 질문이 사전에 민주당 측에 유출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리스가 토론에서 잘한 것은 귀걸이를 통해 ‘커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번지고 있다. 트럼프의 선임 고문인 제이슨 밀러는 X(옛 트위터)에서 아이스바흐사운드솔루션의 노바 H1 오디오 겸용 귀걸이와 해리스 부통령의 귀걸이가 비슷하다는 글을 전달(리트윗)했다. 이 주장은 400만 회가량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카멀라의 복장을 분석하는 민주당 지지자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귀걸이는 해리스가 지난 수개월간 계속 착용한 2000달러짜리 티파니 귀걸이다.

○술렁이는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토론 패배 이후 공화당 내 분위기는 술렁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토론에 지나치게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공화당 중진 중 하나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은 토론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가 기회를 놓쳤다”며 “해리스는 스스로를 잘 통제했다”고 말했다. 또 토론 패배가 “토론 준비팀의 문제는 아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 자신의 실책이었음을 시사했다.

특히 이민자들이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근거 없는 온라인 음모론을 거듭 반복한 것에 실망의 목소리가 컸다. 트럼프의 큰손 기부자 중 한 명인 식료품점 그리스티디스 창업자 존 캐시마티디스는 트럼프가 자신을 “과신했을 것”이라며 “준비하지 않았거나 피곤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대선주자 활동을 중단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리스가 전달 방식, 조직력, 준비 등 여러 면에서 토론에서 분명히 승리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추가 토론에 부정적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의 추가 토론 제의에 대해 “내가 토론을 이겼기 때문에”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폭스뉴스는 다음달 애리조나·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 등 경합주에서 추가 토론을 주최할 수 있다는 제안을 양당 캠프에 보냈다고 밝혔다.

ABC 등 17개 방송사를 통해 10일 토론을 시청한 인원은 총 6710만 명으로 집계됐다. 미디어 조사업체 닐슨은 ABC방송을 통해 시청한 인원이 1910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NBC(1000만 명), 폭스뉴스(910만 명) 등이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 27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TV 토론 때(5130만 명)보다 약 1500만 명 많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토론을 시청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에서 1억 명가량이 토론을 지켜본 것으로 추정된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뉴욕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제로’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재회했다. 이 자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다시 한 번 악수를 청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 기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고 묻자 “그녀는 정중했다”고만 말했다.

같은 날 추모를 위해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 소방서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9·11테러 대응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지지자가 건넨 ‘트럼프 2024’ 모자를 잠시 썼다. 트럼프 캠프는 즉각 SNS 계정에 이 사진을 올리며 “카멀라가 토론을 망쳐서 바이든이 방금 트럼프 모자를 썼다. 지지해 줘서 고마워 조!”라고 비꼬았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