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에 시세 변동률만 반영되도록 산정(계산)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주택 가격이 하락해도 공시가격은 올라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2035년까지 공시가를 시세의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한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이 같은 내용의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체계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이 매년 단계적으로 높아져 부동산 시세 변화가 거의 없더라도 공시가격이 상승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정부는 ‘전년도 공시가격×(1+시장 변동률)’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산식을 적용해 공시가격을 산출하기로 했다. 시장 변동률은 실거래가나 감정평가금액 등을 바탕으로 적용한다.

○“기존 산식으론 재산세 61%↑”

'집값 떨어졌는데 공시가격 상승' 부작용 없앤다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2021년부터 적용됐다. 2020년 기준 토지와 단독·공동주택 등의 공시가 현실화율은 50~70% 수준이었는데, 매년 평균 3%포인트씩 올려 2035년 90%를 달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여파로 직전 10년간 연평균 4.6%이던 공동주택 공시가격 변동률이 2021년 19%, 2022년 17.2%로 껑충 뛰었다. 집값 상승세와 맞물린 결과다. 국민이 낸 주택분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합계액은 2020년 7조3000억원에서 2021년 10조7000억원으로 늘었다.

집값이 하락할 땐 공시가보다 실거래가가 더 낮아지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집주인 입장에선 주택 가격이 내려갔는데도 보유세 부담은 늘어난 것이다. 국토연구원은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예정대로 90%에 도달하면 공동주택의 20%, 표준(단독)주택의 25%에서 이 같은 ‘공시가-실거래가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현실화율이 90%까지 높아지면 시세 변동이 없더라도 주택분 재산세 부담이 지금보다 61% 뛸 것이란 연구 결과(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3년부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더 올리지 않고 2020년(공동주택 기준 평균 69%) 수준으로 되돌렸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 방침을 밝힌 데 이어 국토부가 이날 새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30억 아파트 보유세 36만원 낮아질 듯

국토부는 공시가격 산정식을 ‘전년도 공시가격×(1+시장 변동률)’로 제시했다. 조사자가 실거래가나 감정평가액, 자동산정모형(AVM) 가격 등을 종합 고려해 시장 변동률을 판단한다. 시장 변동률이 10%라면 현재 공시가격이 10억원인 아파트의 내년도 공시가격은 11억원이 되는 간단한 구조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거래가 외에 다양한 지표를 고려하기 때문에 단순히 A아파트 가격이 20% 올랐다고 공시가격도 20% 오르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현재 지역과 주택 유형, 가격대 등에 따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의 차이가 크다. 예컨대 중저가 아파트의 현실화율이 70~80%에 달하는데, 거래가 뜸한 고급 단독주택은 40~50% 선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 정부는 이 간극을 좁히는 ‘보정 작업’은 지속하기로 했다. 만약 조사자가 제시한 공시가격이 균형성 평가 기준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심층 검토지역’으로 지정해 재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정부안이 현실화하면 국민의 세 부담은 일부 완화할 전망이다. 국토부와 우병탁 신한은행 전문위원에 따르면 최근 시세가 30억원(올해 공시가격 22억5900만원, 시세반영률 75.3%)인 아파트의 내년도 공시가는 새 산식을 적용하면 22억9300만원이 된다. 기존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유지될 경우(23억5800만원)에 비해 6500만원 낮아진다. 이때 30억원짜리 집주인(1주택자, 3% 과표상한제, 공정시장가액비율 60% 적용 기준)의 보유세 부담은 926만원(기존)에서 890만원(새 산식)으로 36만원으로 낮아진다.

변수는 이 안을 시행하기 위해선 부동산공시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문재인 정부 때 도입된 만큼 야당이 이에 동의할지가 관건이다.

이인혁/유오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