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한 푼도 안쓰고 모아도 10년 … 2030, 내 집 마련 마스터플랜은
“숨 쉬지 않고 월급을 모아도 서울에 국민 평형 아파트를 사려면 15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사이 아파트 가격은 또 오르겠죠. 부모님 말대로 월급을 모두 대출금 상환에 쓰고 저는 용돈 받아 살아야할 것 같습니다.”

6년차 사회초년생인 직장인 A씨는 매일 퇴근 후 계산기를 두드리며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에서 소형 구축 아파트를 사려고 해도 대출 한도가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인기가 좋다는 ‘국민평형(전용면적 84㎡)’ 아파트를 사려고 하면 수도권에서도 선택지가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그는 “정책대출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며 “연봉은 제자리 걸음인데 아파트 가격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러니 인터넷 카페에 각종 ‘꼼수 대출’이 재테크 전략인 것처럼 소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주택시장이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젊은 예비 수요자들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전세사기 등의 여파로 주거비 부담이 오르는 상황에서 집값마저 오르니 주택 구입이 더 조급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젊은 주택 수요층을 중심으로 ‘영끌’ 방법을 공유하는 등 대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서울 PIR 10.26년으로 늘어

KB부동산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은 10.26을 기록했다. PIR은 주택가격을 가구소득으로 나눈 개념으로, PIR이 10이라고 하면 중위소득 가구가 급여를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아야 서울의 중간 수준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월급 한 푼도 안쓰고 모아도 10년 … 2030, 내 집 마련 마스터플랜은
서울의 PIR은 최근 들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1월 10.18이었던 서울 PIR은 지난 4월 10.26으로 올랐고 지난 5월 10.25에 이어 6월 다시 10.26을 기록했다. 지수가 높을수록 집값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비교적 소득이 적은 청년의 경우엔 PIR이 급등한다. 소득 1분위 가구가 중간 가격대의 주택을 구입할 때 PIR은 28.1까지 상승한다. 급여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더라도 주택 구입까지 28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고가 주택을 구입할 땐 88.2년이 소요된다. 사실상 급여만 모아선 주택을 구입할 수 없단 의미다.

대출 규제 소식에 ‘발 동동’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예측에 최근 2030의 주택 구입 열기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연령별 청약 신청자 정보’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아파트 청약자 100만명 중 30대 이하가 54만3561명으로 집계됐다. 청약 신청자 둘 중 한 명 이상이 30대 이하란 의미다.

시장에선 다시 상승 기류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2030의 주택 구입 열풍을 부추긴다고 본다. 과거 부동산 급등기 당시 청년들이 이른바 ‘영끌’로 불리는 신용대출을 동원한 주택 구입에 나섰던 것과 같은 이유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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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거 부동산 급등기와 달리 최근 정부가 적극적인 가계대출 관리에 나서면서 최근 주택 구입을 고민했던 청년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주요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만기를 최장 5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면서 한도가 대폭 감소했고,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겹쳤기 때문이다. 아직 소득이 많지 않은 사회초년생의 경우엔 대출 한도가 최대 1억원 이상 감소한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줄어든 한도를 신용대출로 만회하려는 경우도 늘고 있다. 9월 첫주에만 신용대출 규모가 5000억원 이상 증가했는데, 전문가들은 신용대출 중 대부분이 부동산 구입 등에 쓰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주담대 한도가 축소됐는데 2030의 부동산 매수량은 오히려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대부분이 과거처럼 신용대출을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특례대출 적극 활용해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구입을 희망하는 2030에게 특례대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생아특례대출이나 디딤돌대출은 신혼부부나 청년들의 주요 주택 구입 수단인데, 시중은행의 부동산 관련 대출보다 금리가 낮아 인기가 좋다. 그러나 최근 정부에서 특례대출 조이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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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약계층·저소득층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겠다는 정책대출의 목적과 약속은 지켜나가야 하지만, 늘어나는 속도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필요하다면 제어해 나가야 한다”며 사실상 특례대출 축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책대출이 집값 상승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라며 총량 제한 가능성을 일축했는데, 정부 내에서 다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책대출이 축소될 경우, 소득 기준 등이 먼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소득이 높은 신혼부부 중 주택 구입을 준비 중인 경우가 있다면 대출 축소 전에 구입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특례대출 때문에 주택 구입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실수요자가 규제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주택 당장 구입을 할 예정이라면, 특례대출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