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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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1번지’의 대명사가 된 대치동 일대가 일터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대치동 학생들과 부모들의 일상을 면밀히 지켜봐 왔다.

대치동 사람이면서도 대치동 사람이 아닌, '대치동'을 어느 정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란 얘기다. 학원가 주변의 수많은 식당과 카페, 그리고 병원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대치동 병원을 예로 들어보자. 대치동 병원은 다른 동네 병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유독 공부하는 학생과 그의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한의원이 많다. 대치동 한의원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는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이 약을 처방받는 시간이 아까워 부모가 대신 받으러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치동 한의사들은 “대치키즈가 먹는 약”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들도 늘어난 것을 체감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대치동 엄마들이 단순히 ‘쥐 잡듯’ 아이의 교육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이들이 바라본 대치동은 어떤 모습일까.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는 이번주부터 대치동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바라본 대치동 사람들 이야기를 연재한다.

‘대치키즈’, 이 동네 한의사가 되어보니

“대치동은 많은 분이 아시는 대로 다른 지역보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이 굉장히 높은 지역입니다. 그만큼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데 최선의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대치동에서 나고 자라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 한의사가 된 김상원 경희영신한의원 대표원장은 “주로 아이들이 힘들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한의원에 내원해 상담을 원하는 모습에서 그런 점을 자주 느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나 역시 이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느낀 것이지만 학교 선생님들도 입시 등에 해박하다. 기본적으로 동네 분위기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게 형성돼 있다”고 했다. ‘대치키즈’로 누구보다 대치동을 잘 아는 그가 이 지역에 한의원을 냈다는 점에서 대치동의 교육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지역 한의원과 대치동 한의원의 차별점이 있을까. 대개 한의원에서 일반 보약과 통증 진료 등을 받는다면, 대치동 한의원은 수험생과 수험생 가족, 특히 엄마들의 스트레스 관련 질환 진료에 집중해야 하는 환경이라는 게 이곳 한의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김 원장은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동네 한의원의 성격을 띤다”면서도 “총명탕 등 공부에 도움이 되는 보약이나 관련 클리닉 등에 대한 홍보 비중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다른 동네에 비해 수험생 관련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다”고 짚었다. 실제 온라인상에는 ‘수험생 체력보강 전문 한의원’, ‘수험생용 공진단 처방’, ‘수험생 불안 스트레스엔 한약’ 등 수식어를 단 홍보 글이 쏟아진다.

대치동 한의사들에 따르면 최상위권 학생들은 평소 건강관리도 공부처럼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내원한 아이들은 평소 체력과 면역력 강화를 위한 녹용, 경옥고 중심의 맞춤 처방으로 체력관리를 받는다.

시험 기간 1달 전부터는 총명탕으로 집중 케어를 받는다. 시험 1주일 전부터 당일에는 공진단과 우황청심환 등으로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불안감을 해소한다. 건강 기능 식품과 영양제처럼 규격화된 제품에 비해 개개인의 특성과 체질을 고려한 맞춤 한약 처방이 더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원장은 “보약이나 공진단 같은 경우 여름과 겨울 같은 기력이 쉽게 떨어질 수 있는 시기에 원한다. 우황청심환은 시험 전에 주로 찾는다”면서 “학생들의 집중력 향상과 기력 보충에 있어 확연한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수요가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공부 효율을 높이기 위해 향정신성의약품까지 복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약은 천연 재료를 이용해 비교적 안전한데다, 수험생 개개인의 상태에 맞춰 조제할 수 있어 수요가 높다고 의사들은 보고 있다. 김 원장은 “한의원 치료는 침 등을 통해 심리적 압박 등을 해소하고 한약으로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인다”며 “또 기력 회복을 돕고 면역력을 강화하고 전반적인 체력 증진을 이룰 수 있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유년 시절부터 고등학생까지 대치동에서 ‘전부’를 쏟은 김 원장은 누구보다 아이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는 듯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 오후 10시까지 빡빡하게 짜인 학원 스케줄, 부모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등이다. 그는 “약재의 가감을 통해 다한증 등 학생들의 불편한 증상을 함께 해결해주려 하는 편”이라며 “우황청심환의 경우 미리 여러 차례 복용 후 효과를 테스트해 시험 때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지 않도록 권유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치동에서 학생들과 부모를 타깃으로 하는 한의원은 50여곳이 훌쩍 넘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준비생들을 타깃으로 하는 학원가가 대거 모인 한티역 인근에만 15여개가 모여있다. 현재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아이들의 성장 등을 고민하는 부모도 많이 내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늘어나는 수요를 고려하면 앞으로 대치동이 ‘한의원 포화상태’가 될 것이라고도 본다. 또 학생을 직접 케어하는 부모들 역시 스트레스로 인한 치료가 꾸준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수요가 보장된 입지다.

김 원장은 “수험생들이 한의원을 찾는 이유로 대부분 체력 보강과 피로 해소, 면역력 강화, 집중력 및 기억력 향상, 스트레스 및 불안 완화 등이 있다”면서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외에도 한의학 치료가 소화 기능 개선이나 감기, 기침, 두통 등의 잔병치레를 회복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효과가 널리 알려지면 더욱 많은 분이 한의원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치키즈가 먹는 약' 사러 지방에서도 온다더니…대치동 '반전' [대치동 이야기 ㉓]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