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서남부 항구 도시 예테보리의 정부 연구 기관 라이스 SSPA 마리타임에서 8월 30일 라르스 구스타프손 영업장이 대형 수조 앞에서 연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리안 기자
스웨덴 서남부 항구 도시 예테보리의 정부 연구 기관 라이스 SSPA 마리타임에서 8월 30일 라르스 구스타프손 영업장이 대형 수조 앞에서 연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리안 기자
북유럽 소강국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서남쪽으로 약 470㎞ 떨어진 항구 도시 예테보리. 스웨덴 정부 소유의 연구·혁신 기관 라이스 연구소가 위치해 있는 곳이다. 지난달 찾은 라이스 산하 해양 기술 전문기관 SSPA 마리타임(이하 SSPA)에는 곳곳에 손때가 묻은 흔적들이 있었다. 설립 85년차 연구기관의 역사였다.

테마파크처럼 긴 터널과 사다리처럼 가파른 계단을 지나면 플룸 라이드를 연상케 하는 공간이 나타났다. 125명 이상의 연구진이 수력학을 연구하기 위해 대형 수조 위에 유유자적 떠 있는 소형 선박을 활용하는 공간이다. 라르스 구스타프손 SSPA 영업장(사진)은 "조선업 강국이었던 스웨덴이 이제는 조선·해운의 지속 가능성과 회복력 있는 미래 해양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하는 산실"이라고 설명했다.

'바이킹의 후예' 스웨덴은 20세기 조선업을 주름잡았다. 하지만 1990년 무렵부터 한국, 일본 등 신흥 강자에 밀려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2002년엔 조선사 코쿰스가 최남단 항구 도시 말뫼에서 운영하던 조선소의 크레인을 단돈 1달러를 받고 현대중공업에 팔아넘기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당시 분해된 코쿰스 크레인이 배에 실려 스웨덴을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고, 이는 '말뫼의 눈물'로 불리며 스웨덴 조선업의 쇠퇴를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이후 스웨덴은 절치부심했다. '비록 제조업 기반은 내어줬지만, 미래 해양 기술을 연구하는 세계의 두뇌가 되겠다'는 판단에서다.
선박의 수력학 등을 연구하는 스웨덴 라이스 SSPA 마리타임에 설치된 대형 수조.  /사진=김리안 기자
선박의 수력학 등을 연구하는 스웨덴 라이스 SSPA 마리타임에 설치된 대형 수조. /사진=김리안 기자
그 중심엔 △수력학 △해운 △선박 디지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SSPA가 있었다. 최근 SSPA의 최대 관심사는 선박 위에 최신식 닻을 설치한 뒤 세찬 해상 바람을 이용해 연료를 절감하는 효과를 연구하는 풍력 추진 선박이다. 조선·해운업계의 탄소중립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향후 해상부유식 초소형모듈원자로(SMR) 등도 연구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소피아 베르너 책임연구원은 "현재까지 로터세일(13대), 석션세일(8대), 윙세일(7대) 등 총 30대 가량의 풍력 추진 선박이 건조됐고, 대부분이 SSPA의 연구 결과물들"이라며 "앞으로도 한국 등 고객사의 발주를 받아 더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 유럽 기업들과 한국 조선소의 가교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조선업뿐만이 아니다. 스웨덴은 볼보 그룹의 볼보 자동차, 세계 최대 로봇기업 ABB의 전력망 사업부 등을 각각 중국(2010년)과 일본(2020년)에 매각했다. 그러나 아시아 신흥국에 제조업 기반을 내어준 스웨덴은 연구개발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클린테크 역량에 집중하고 있다. 2017년 세계 최초로 '2045년 탄소중립' 목표를 밝힌 국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스웨덴 북부는 유럽의 탄소중립 답안으로 널리 홍보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한스웨덴대사관 관계자는 "스웨덴은 작은 나라라 우리가 탈탄소화를 이룬다고 해도 전 세계 탄소 배출 감축량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우리가 클린테크에 집중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의 탄소중립을 지원하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KPF 디플로마 기후변화대응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보도됐습니다.

예테보리=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