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가 주목하는 대만 작가 "우는 건 절대 창피한 일 아냐"
“저는 눈물과 슬픔의 힘을 믿어요.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울고 싶으면 크게 우세요’라고 말하는 책입니다.”

한국을 찾은 대만 소설가 천쓰홍(사진)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67번째 천산갑>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웃는 모습은 인터넷에 많이 올리는데, 슬픈 모습은 올리지 않는다”며 “그게 이상해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펴낸 장편소설 <귀신들의 땅>으로 대만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12개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그는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소설가, 번역가, 배우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1월 국내 출간된 <귀신들의 땅>은 9개월 만에 1만5000부가 팔리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책은 1980년대 대만을 배경으로, 한 일가족과 대만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겹쳐 그렸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짙게 녹아 있다. 그는 “출판사에서는 책이 안 팔릴 거라고 했는데, 기적적으로 많은 분이 읽어주셔서 한국까지 오게 돼 영광스럽다”고 했다.

<67번째 천산갑>은 대만에서도 지난해 10월 출간된 신작이다. 현재의 대만이 배경이다. 유년 시절에 만나 평생에 걸쳐 우정과 헌신, 상처를 주고받은 한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의 관계를 통해 고독과 치유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

그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소수자 남성과 일반 여성은 모두 2등 여성으로 취급된다”며 “물론 대만은 이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긴 했지만 대도시 외 지역에선 여전히 성소수자가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라고 말했다. 멸종위기 동물 천산갑은 성소수자인 남자 주인공을 상징한다.

대만 시골에서 자란 성소수자인 천쓰홍은 “청소년기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했다. 그때 힘이 돼준 것이 문화와 예술이다. “어려서부터 제 정체성을 숨기려 애를 썼지만 잘 안됐어요. 세계문학을 많이 읽고 영화도 즐겨보면서 다른 세상과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보수적인 사회에서 영화나 문학은 상처받은 청춘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