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D램 생산능력(캐파)을 4년 새 5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세계 4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D램 시장의 90% 이상을 나눠 갖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빅3’ 체제에 중장기적으로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CXMT가 세(勢)를 불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가격 결정력이 약화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위 마이크론 턱밑까지 추격

中 CXMT, 글로벌 D램 '톱4' 올랐다
CXMT는 2016년 설립된 신생 D램 업체다. 미국의 중국 제재가 시작된 2020년 이후 공격적으로 캐파를 확장하고 있다. 2020년 월 4만 장(웨이퍼 기준) 수준이던 D램 생산능력은 현재 월 16만 장(글로벌 점유율 10%)으로 늘어 세계 4위가 됐다. 지난해 말(12만 장)과 비교하면 9개월 만에 30% 넘게 확대됐다. 지난해 말까지는 대만 난야가 월 생산능력 7만6000장으로 세계 4위였다.

캐파 확장은 현재진행형이다. 13일 노무라증권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CXMT의 D램 생산능력은 올해 말 20만 장으로 증가하고, 내년에는 30만 장으로 늘어난다. 전 세계 생산량의 15%를 CXMT가 차지한다는 얘기다. 생산능력만 놓고 보면 3위 마이크론(약 20%)을 거의 따라붙는 규모가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능력은 각각 40%와 30% 안팎이다.

CXMT가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린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 스마트폰 업체들의 자국산 부품 이용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샤오미, 트랜션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지난해부터 CXMT의 12Gb(기가비트) 저전력 모바일 D램인 LPDDR5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노무라증권은 “CXMT가 자국산 중저가 스마트폰, PC, 가전제품에 공격적으로 침투하고 있다”며 “성능이나 수익성이 빅3사보다 뒤지고 지식재산권(IP) 문제 때문에 수출도 어렵지만 중국 정부란 뒷배 덕분에 자국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XMT발 D램 공급 과잉

CXMT가 주력하는 제품은 레거시(범용) D램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4다. 2012년 상용화된 구형 제품이다. 현재 시장의 주력은 2020년 상용화된 DDR5다. 인공지능(AI) 가속기에 들어가는 핵심 메모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도 현재 시장의 주류인 HBM3E(5세대)보다 훨씬 뒤처진 HBM2(2세대)를 주로 생산한다.

CXMT가 구형 제품 물량을 쏟아내다 보니 제품 가격은 떨어지는 추세다. 16Gb DDR4의 현물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 평균 3.5달러에서 올 상반기 3.3달러로 5.7% 내렸다. 같은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로 인해 점유율 하락과 가격 하락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레거시 제품은 첨단 반도체와 비교해 부가가치가 낮지만 PC, 자동차, 방위산업 분야 등에 두루 쓰인다.

국내 반도체업계의 중국 수출 비중은 30~40%에 달한다. 대부분 범용 제품이다. 삼성전자의 올 상반기 중국 매출은 32조3452억원에 이른다. 대부분은 반도체에서 나온다. SK하이닉스도 상반기 중국에서 8조606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범용 반도체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가 더 큰 피해를 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삼성전자의 HBM2E를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 생산 물량의 대부분을 미국 AI 가속기 업체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