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까지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전을 여는 이불 작가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문 앞에 서 있다.  /Eileen Travell 제공
내년 5월까지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전을 여는 이불 작가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문 앞에 서 있다. /Eileen Travell 제공
“마치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느낌이 들도록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낮과 밤, 비와 눈 같은 주변 환경에 맞춰 ‘변주’를 구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불이 12일(현지시간)부터 내년 5월 27일까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 이불, 롱 테일 헤일로(Long Tail Halo)’전을 연다. 이불은 1980년대 후반부터 조각, 회화,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유토피아를 향한 인류의 꿈과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탐구해온 현대미술 작가다.

이날 이불은 전시 첫날을 기념해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서 이번 전시의 작업 과정과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 작품은 미술관 파사드(건축물 정면 외벽)에서 볼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19년부터 매회 새롭게 작가를 선정해 파사드에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대표적 현대미술품 전시 시리즈다. 제네시스와 파트너십을 통해 올해부터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이불은 이번 전시에서 총 4개 작품을 선보인다. 인간과 유사한 형상의 작품 두 점과 동물 형상의 작품 두 점으로 구성했다. 인간의 신체를 닮은 작품들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그리스 조각상에 피카소의 큐비즘을 적용한 게 인상적이다. 양쪽 끝에 배치한 동물 형상의 작품은 늑대 혹은 개를 연상시키는 생명체가 무언가를 뿜어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이불은 “작품의 파편적인 부분에서 여러 시대와 지역을 관통하는 레퍼런스를 담았다”며 “작품들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들과 잘 결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전시된 각 작품은 진보와 완전성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열망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작품에 내재한 시행착오와 불완전성의 이면을 암시한다. 이불은 이날 전시 제목의 의미를 명확히 밝히진 않았다. 다만 “‘롱’ ‘테일’ ‘헤일로’ 각각의 단어가 만나서 (뜻이 합쳐졌을 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면 좋을 것”이라고 힌트를 줬다. 그는 “시간과 물질, 정신은 크게 보면 (서로 연결돼) 같은 뜻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불은 약 1년간의 작업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공유했다. 이번 작품은 겉면은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었고, 견고함을 더하기 위해 내부엔 스테인리스스틸로 구조를 짰다. 원래 계획한 크기의 10분의 1로 작품을 설계한 다음, 실제 전시할 모습으로 만들어갔다. 이불은 “이 과정을 통해 작품을 수정하고 더 깊이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맥스 홀라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 자리에서 “이불은 늘 경계에 도전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며 “뜨거운 동시에 차갑고, 기쁨 가득한 감정이 있으면서도 절망감을 함께 느끼게 한다”고 소개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