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벤체 레트바리 헝가리 내무부 장관이 부다페스트의 국제 장거리 버스 네플리겟 역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EPA
지난 6일 벤체 레트바리 헝가리 내무부 장관이 부다페스트의 국제 장거리 버스 네플리겟 역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EPA
헝가리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온 불법 입국자들을 버스에 태워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이송하겠다고 예고했다. 난민을 받게 된 벨기에는 버스를 차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앞서 영국이 난민을 르완다로 보내려다 실패한 데 이어, 독일도 역시 난민 추방을 위해 케냐, 우즈베키스탄과 협약에 나서는 등 몰려드는 이주 희망자들 때문에 유럽이 몸살을 앓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6일 레트바리 벤스 헝가리 내무장관은 버스 행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국에 있는 망명 신청자들에게 무료로 브뤼셀행 편도 버스 탑승권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공화당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반발해 남부 국경을 넘어온 불법 입국자들을 민주당이 집권한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으로 실어 나른 것을 벤치마크한 전략이다.

이번 조치는 지난 6월 유럽사법재판소(ECJ) 판결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ECJ는 헝가리가 망명 신청자를 불법 구금·추방하는 등 EU 망명 규정을 위반했다며 2억 유로(약 30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시정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하루 100만 유로(약 15억원)의 이행강제금을 추가하겠다고 판결했다.

헝가리 측은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불법 입국한 이주자들이 일단 정치적 망명 신청을 하거나 인도적 난민이라고 주장한 뒤 심사 기간에 잠적해 불법 체류하는 사례가 많아 불가피한 조치라고 항변하고 있다. 단속 조치를 하지 않으면 불법 입국자들이 더욱 몰려와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이 판결에 대해 "브뤼셀(EU) 관료들에게는 자신들의 유럽 시민보다 불법 이민자들이 더 중요한 것 같다"며 항의하며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벨기에는 반발하고 있다. 필립 클로즈 브뤼셀 시장은 지난 9일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버스가 출발하면 차단하겠다"며 "이미 알렉산더 드 크루 총리와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니콜 드 무어 벨기에 이민부 장관 역시 버스가 헝가리를 떠난다면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EU 측에선 헝가리를 비난하고 나섰다. 아니타 히퍼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이번 계획이 실행된다면 명백한 EU법 위반일 뿐 아니라 진정성 있는 협력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솅겐 지역 전체의 안보도 훼손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헝가리에 입국한 아프리카 등 출신 이민자들은 서유럽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대거 버스에 탑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헝가리가 실제 난민을 태운 버스를 브뤼셀로 보낸다면 헝가리와 EU 집행위 간 갈등이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다만 버스가 독일 등 타국 영토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계획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독일 역시 불법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독일 정부는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을 신속히 송환하기 위해 케냐, 우즈베키스탄 등 정부와 협약을 서두르고 있다.

영국도 리시 수낵 전 총리 시절 불법 이민자들을 르완다로 보내 심사를 받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백지화됐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