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뭐가 문제길래…전문가 이유있는 조언
최근 인공지능(AI)을 두고 일각에서 '거품론'이 부상하면서 국내외 AI·반도체·전력 관련 종목 주가가 비실비실한 분위기다. 한동안 주가를 끌어올린 기대감에 비해 수익화 시점이 늦어진다는 불안이 작용한 까닭이다.

'수익성이 아직 기대 이하' 줄하락세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한달간 SK하이닉스의 주가는 12.80% 하락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6.58% 내렸다. 그간 AI 전력 공급 관련주로 꼽힌 기업들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콘덴서 기업 삼화전기는 16.58%, 전선기업 대원전선은 13.43% 내렸다. LS일렉트릭은 17.57% 하락했다.

미국 증시에서도 AI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기업들의 주가가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엔비디아는 지난 한달간 주가 상승폭이 0.86%에 그친다. 올들어 고점이었던 6월 중순 135달러선에 거래된 것에 비하면 고점 대비 주가가 약 12% 빠졌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올들어 고점에 비하면 7.9% 내렸다. 애플은 올해 고점에 비해 5%가량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지난 13일엔 어도비 주가가 8.47% 빠졌다. 시장 기대를 밑도는 가이던스를 발표한 영향이다. 어도비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등 대표 소프트웨어에 생성형 AI 서비스를 탑재했지만 시장의 기대만큼은 수익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계속 투자"…'킬러 서비스'는 내년 이후 예상

금융투자업계에선 AI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이 달라지면서 투심이 악화했다고 보고 있다. '(AI가) 좋은 건 알겠는데, 더이상 설레일 정도로 기대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이전까지는 AI 기업에 대해 일정부분 이상 위험을 감수한다는 전제를 뒀지만 최근엔 수익화를 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분위기다. 황민성 삼성증권 테크팀장은 "AI 상업화 지연과 투자자본수익률(ROIC)의 단기 비효율성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며 "여기에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칩 블랙웰 출시 시점이 소폭 지연되면서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기조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AI 시장을 두고 투자자들이 주로 우려하는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일단 지금껏 뚜렷한 수익을 내는 AI 서비스가 사실상 없다. 뾰족한 신규 비즈니스 모델(BM)도 딱히 없다. 기술적 측면에선 AI의 학습 속도가 자료 축적량에 비해 너무 빨라 고도화 속도가 느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이같은 우려사항이 중장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단 수익을 내는 '킬러 서비스'와 BM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AI 서비스를 지원하는 차세대 반도체와 관련 디바이스가 먼저 출시돼 확산해야 한다는 까닭에서다. 정보통신(IT)업계에선 내년이 하드웨어 차원에서 AI가 도입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욱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인프라 구축과 디바이스 보급 이후에 '킬러 서비스'가 등장한다"며 "킬러 콘텐츠를 디바이스 출시 전에 논하는 것은 이른 일"이라고 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글로벌 주요 서비스로 성장한 인터넷 서비스는 대부분 '인터넷 혁명기'로 통하는 1997~2000년이 아니라 그로부터 약 5년 이후인 2004~2006년에 등장했다는 것을 사례로 들었다. 페이스북(2004년), 유튜브(2005년), 트위터(2006년) 등이 그렇다. 여기엔 인터넷 인프라를 비롯해 노트북 PC 등의 보급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설명이다.

AI 모델용 학습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걱정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오픈AI 창립 멤버 중 하나인 안드레 카파시 전(前) 테슬라 AI 총괄은 이달 초 한 인터뷰에서 "인터넷 데이터 자체는 단순히 웹페이지의 모음일 뿐 AI 신경망 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AI가 배워야 하는 것은 (데이터를 만들 때 작용한) 인간의 사고 흐름 방식인 만큼 AI가 합성해 생성한 데이터로도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AI 모델 학습을 위한 데이터가 동났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AI 투자를 이어간다는 분위기다. 올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주요 빅테크들은 당장 수익이 되지 않더라도 AI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잇따라 밝혔다. 메타는 올해 안에는 생성형 AI가 유의미한 매출 원동력이 되지 않아도 향후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설비투자 하한선도 소폭 상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유료 AI 서비스 사용량이 늘고 있다며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다. 아마존은 올 하반기 투자를 상반기보다 늘릴 것이라며 수년 내에 AI 매출이 유의미하게 나올 것으로 봤다.

지난 12일엔 미국 백악관이 정부 고위급 관계자들과 빅테크 임원들이 모인 회의를 연 뒤 AI 인프라 개발 촉진을 위한 테스크포스를 발표했다. 이날 회의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루스 포랏 알파벳 최고투자책임자(CIO),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다리오 애머데이 앤스로픽 CEO 등이 참석했다.

"AI 서비스 확산은 지속… 종목 선별해 골라야"

전문가들은 AI 시장이 지금보다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AI 키워드로 오른 주식들이 전반적 조정을 겪고 있는 시기에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술 발전 속도 둔화, AI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수용성 저조 등 기업의 AI 투자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유발할 수 있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며 "상업화 지연에 대한 리스크는 이미 주가에 반영되어 왔고, 산업 자체의 큰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는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초기 플랫폼 장악을 위해 경쟁적 투자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AI 시장 확대 가능성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할 때"라고 했다.

차소윤 BNK자산운용 주식운용1팀장은 "이번 AI 투자 사이클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파편화와 주문형 제품"이라며 "표준화 제품이 많이 쓰이는 시기엔 누가 더 싸게 만들 수 있는지가 경쟁력의 핵심이었지만, AI 투자 사이클은 주문형 반도체가 적극적으로 개발되고 보급되는 구간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AI 서비스가 확산되는 과정에선 각각 서비스에 최적화된 주문형 반도체를 사용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더 많은 고객에게 맞춤형 제품을 공급하는 역량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이후엔 AI 스펙을 갖춘 새로운 대규모 세트 수요 영향으로 IT 빅사이클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차 팀장은 "다만 아직 시장이 이 사이클에 도달하지 못한 채 현재 조정 국면을 겪고 있다"며 "AI 사이클에서 특정 트렌드에 맞춰진 종목에 한해선 주가가 과도하게 조정된 시점에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고려해볼 만 하다"고 조언했다.

챗GPT 운영사 오픈AI가 지난 12일 공개한 o1 등 AI 신규 서비스가 향후 투자심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픈AI의 o1은 기존 챗GPT의 GPT-4o 등에 비해 추론 능력이 강화된 게 특징이다. 오픈AI는 유료 사용자를 대상으로 o1의 프리뷰(선공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중한 삼성증권 연구원은 "오픈AI가 o1으로 다시 한번 프론티어(선진적) 모델 경쟁에서 후발주자들과 격차를 벌렸다"며 "만일 다른 경쟁자들이 근시일 내에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모델을 공개하지 못할 경우엔 기업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