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1000억달러(약 4100조원). 지난 13~17일 열린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 2024)에 참가한 상위 10개 기업의 시가총액이다. 세계 10대 제약사 중 당뇨약에만 집중하는 노보노디스크를 제외한 모든 기업이 총출동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의학자들에게 부스를 차려 자사 신약 기술을 소개한 기업만 165곳이다.

ESMO는 학술행사인 데다 사람 대상 임상시험 연구 결과가 주로 발표된다. 혁신 기술 발표가 많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올해엔 항체약물접합체(ADC),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방사성의약품 등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 발표가 이어졌다. 기술 개발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는 의미다.

지난해 일본 아스텔라스의 파드셉 임상 결과 발표로 기립박수를 받은 ADC 연구 성과는 올해도 나왔다. 낸시 린 다나파버 암센터 교수는 ESMO 개막식 후 첫 메인 세션에서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ADC ‘엔허투’가 뇌로 전이된 유방암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상용화 시대를 연 mRNA 기술을 이용한 암 정복 시도는 계속됐다. 애덤 그리핀 미국 엠디앤더슨 암센터 교수는 코로나19 mRNA 백신이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은 폐암 환자 생존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색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면역항암제 치료 100일 안에 모더나와 화이자의 mRNA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람은 3년 생존율이 57.2%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의 30.7%보다 높았다.

차세대 면역항암제 등장을 알리는 성과도 공개됐다. 데이비드 스피겔 미국 세라캐넌연구소 교수는 아이테오스테라퓨틱스와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면역항암제 ‘벨레스토터그’와 ‘젬펠리’를 폐암 환자에게 투여해 암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벨레스토터그는 미국 머크(MSD),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등이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한 새로운 계열(TIGIT)의 면역항암제다.

바르셀로나=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