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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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좋은 회사에 다니기를 열망합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기를 희망합니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성과를 내며 즐겁게 일하기를 원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사실 즐겁게 일한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같은 회사, 같은 부서, 같은 동료들과 일해도 사람들마다 만족하는 기준과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예전에 리서치센터 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 한 분이 매일 아침 사무실로 빵을 가지고 왔습니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제빵 교육을 받는데 매일 다른 빵을 만들어 주변에 나누어 준다는 거예요. 동료들은 그 직원이 가져온, 아니 옆집 아주머니가 만든 그 빵을 먹으며 행복했습니다. 매일 다른 빵에 커피를 마시며 그 아주머니가 제빵 학원에 계속 다니기를 빌었을 정도니깐요. 아침뿐만 아니라, 그 시절 우리는 거의 매일 하루 세끼를 같이 먹었습니다. 아침은 아주머니의 빵으로, 점심도 다른 약속이 없으면 부서 직원들과 함께, 야근하면 또 저녁 식사까지….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집에 있는 가족보다 더 자주 같이 밥을 먹는 식구(食口)라고 생각했지요.

여의도의 출근 시간은 빠릅니다. 증권회사 리서치센터는 특히 더 빠르지요. 저는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동안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출근했는데, 리서치센터 모닝 미팅이 오전 7시 30분부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엔 대부분 신참들인 RA는 더욱 바쁩니다. 모닝 미팅 전에 밤새 일어난 글로벌 금융시장 변화를 확인하고 오늘 발표할 시니어 애널리스트들의 자료를 다시 꼼꼼히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큰 이슈나 이벤트가 있는 날엔 영업 부서의 시니어부터 임원들까지, 미팅 참석자가 100명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지요.

무사히 모닝 미팅을 마치면, 리서치 어시스턴트(RA)들은 즉시 내부 고객(사내 다른 부서 및 지점)과 외부 고객(기관 투자자 등)에게 일제히 그날의 자료를 보냅니다.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주요 고객에게 직접 콜합니다. 이 모든 일이, 국내 주식 시장이 개장하는 오전 9시 전에 끝나야 하니 눈코 뜰 새 없이 전쟁 같은 아침입니다.

전쟁 같은 모닝 미팅과 콜이 끝나면 그제야 행복한 모닝 빵에 커피를 한잔 마셨습니다. 그때가 참 행복했어요. 서로를 동고동락하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RA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각자 성장하는 속도와 커리어의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일이 더 많아지고, 보이지 않던 격차가 정서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지위상 차이로 이어집니다. 한두 명이 먼저 RA를 벗어나 주니어 애널리스트로 발탁되기도 합니다. 아마 그 때쯤인 것 같아요. 행복한 모닝빵을 같이 먹지 못하게 된 것이. 가족처럼 생각하던 동료 직원들 각각이 자기가 가야 할 길과 회사에서의 본인의 위치, 그리고 본인이 행사할 권한과 맡아야 할 책임을 서서히 인식했기 때문일까요?
사진과 기사 내용은 무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과 기사 내용은 무관./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족과 식구는 다릅니다. 가족(家族)은 혈연이나 혼인 등으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법적으로 특별한 관계로 묶인 사람들이지요. 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 등이 가족입니다. 같은 집에 살지 않아도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식구(食口)는 다릅니다. 글자 그대로 '같이 밥을 먹는 입'이 바로 식구입니다. 동거 등 생활 중심적인 관계입니다. 물론 50년 전만 하더라도 가족이 식구였고, 식구가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학을 간 아들이 가족은 맞지만, 식구는 아닙니다. 결혼한 딸이 가족이어도 식구는 아니지요. 오히려 매일 나와 같이 밥을 먹는 동료들이 식구이고, 함께 사는 반려견, 반려묘가 내 식구인 셈입니다.

회사 동료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것은 정서적으로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책임의 차이 때문이지요. 가족은 무한 책임의 관계입니다. 내 아들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해도 아들을 버리진 않습니다. 딸이 조금 실수해도 부모가 그 책임을 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권한과 책임이 명확한 조직입니다. 거기서 '가족처럼'을 생각하며 '우리는 가족이다'를 외치면 곤란하지요. 가족은 자연발생적 1차 집단이지만, 회사는 특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2차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회사는 직원의 잘못을 가족처럼 무한 책임을 져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지요. '가족처럼'은 정서적 캐치프레이즈일 뿐입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했더니 주인 행세를 한다'는 말이 있지요. 정서적 구호를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기면 곤란합니다. 아직도 사훈에 가족처럼, 가족같이 등의 문구를 적어 둔 기업들이 있습니다. 사훈은 사훈일 뿐입니다.
사진과 기사 내용은 무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과 기사 내용은 무관./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거 금융 기관의 전산화가 덜 이뤄진 시절, 하루의 업무를 마감하는 과정에서 장부상 10원이 틀리는 일이 가끔 생깁니다. 은행이나 증권사의 지점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해당 부서 모든 직원이 야근하면서 '잃어버린 10원'을 찾아냈지요.

틀린 10원을 빨리 찾으면 다행히 제때 퇴근할 수 있었지만, 찾지 못하면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곤 했습니다. 금액이 많으면 오히려 오류를 빨리 발견할 수 있지만 10원 혹은 100원이 틀리면 정말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쌓이면 그 10원을 실수한 직원에게 비난과 질책이 이어졌고, 그 직원은 칼퇴근을 방해하는 '공공의 적'이 되었지요.

그런데 한참 동안 10원의 오류가 발생하지 않다가 문제가 터졌습니다. 본사 감사팀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요. 업무 마감 무렵 누군가 장부상 10원씩 입금한 사례를 몇 차례 발견한 것입니다. 누군가 10원의 오류로 인해 받을 질책이 두려워, 장부상 10원이 부족할 때마다 몰래 그 액수를 입금한 것입니다.

칼퇴근이라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 사비로 입금해 전체 숫자를 맞췄던 것이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0원을 입금한 그 직원은 횡령은 아니지만, 업무 마감 프로세스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에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게 회사입니다. 가족이라면 어땠을까요? 웃으며 넘어갔을 일입니다. 어쩌면 선행을 했다고 칭찬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회사는 가족이 아닙니다. 가족은 집에 따로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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