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의 거대한 윤곽을 또렷히 드러낸 '노장' 틸슨 토마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리뷰] 마이클 틸슨 토마스 지휘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즌 오프닝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 9월 13일 공연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Michael Tilson Thomas)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Emanuel Ax)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14번
말러 | 교향곡 제5번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즌 오프닝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 9월 13일 공연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Michael Tilson Thomas)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Emanuel Ax)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14번
말러 | 교향곡 제5번
2024년 5월 12일,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Michael Tilson Thomas, 이하 MTT·79세)가 영국 런던의 바비칸 홀 포디움에 섰다. 런던 심포니와 말러 교향곡 3번을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공연 도중 MTT는 악보를 덮더니 유쾌한 목소리로 단원들을 향해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콘서트를 리허설로 착각했던 것이다. 당황한 연주자들은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분위기를 상기시켰고, 잠시 중단되었던 연주는 재개되었다.
MTT는 2021년 ‘교모세포종’ 수술을 받았다. 이 질환은 악성도가 매우 높은 공격적인 뇌암으로, 진단 후 3~6개월 이내에 사망할 수 있으며 치료가 잘되더라도 평균 생존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의 오케스트라나 오페라극장은 가을에 시즌이 시작된다. 여름 오프 시즌에는 유명 페스티벌의 상주 음악 단체로 활동하거나 해외 투어를 소화하기도 한다. 긴 쉼을 지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즌 오프닝 공연에는 많은 관심이 쏠린다. 미 중부의 명문 악단인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는 올 시즌 오프닝 공연에 임윤찬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조성진을 초청했다.
뉴욕필하모닉의 이번 시즌의 첫 번째 주인공은 MTT였다. 그의 절친이자 뉴요커가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Emanuel Ax)도 함께 참여했다. 두 사람은 수많은 무대를 함께 해왔고 특히 지난 2020년 MTT의 75세 생일 기념 공연에 초청받아 특별한 우정을 이어왔다. 액스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4번은 작곡가의 ‘비엔나 황금기’ 이전에 쓰인 작품이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모차르트는 이 곡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 그는 군데군데 일반적인 화성 진행 패턴을 깨뜨렸다. 특히 1악장에서 카덴차로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총주를 E플랫 장조가 아닌 C단조로 전환하는 수법은 모차르트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파격이다.
이 곡의 초연은 공식 음악회가 아닌 모차르트의 조촐한 사적 모임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그가 이 곡을 실내악 형태의 협주곡으로 염두에 둬서 작곡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날 뉴욕필은 10명의 제1 바이올린을 비롯해 꽤 많은 인원이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큰 그룹이 무대에 오르다 보니 마치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뒤로 숨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인원을 줄여 모차르트 특유의 활력과 에너지를 더했으면 어땠을까.
공연은 목요일 저녁에 시작되었고 금요일과 일요일 공연은 모두 낮 2시에 열렸다. 혼잡을 피해 금요일 낮을 선택했지만, 객석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음악 평론가는 연주 당일이 되어서야 겨우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정 인종이나 연령대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관객들이 평일 낮에 홀을 가득 채웠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3회 공연 중 두 번을 낮에 배치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새로운 관객층을 발굴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성공적이다. MTT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1999년 여름,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던 한 페스티벌에 수석 비올리스트 중 한 명으로 참석해 시벨리우스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연주했다. 또 관객으로서 그의 말러 교향곡 지휘를 지켜보기도 했고 몇 년 후에는 그의 지휘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현대 지휘자 중에서 MTT만큼 말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을까?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함께 말러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며 그는 ‘말러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래서 그가 지휘하는 말러 5번을 만나는 것이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MTT의 뛰어난 역량 중 하나는 순간적인 디테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탁월하다는 점이다. 그는 곡의 큰 윤곽을 잡아두고, 그 기준에 미치지 않거나 혹은 넘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통제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이러한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정교한 컨트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지점들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컬러 펜으로 밑줄을 긋고 형광펜 표시가 있는 참고서적을 보는 것과 같다. 청중은 악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핵심을 꿰뚫는 통찰도 얻게 된다.
5번 교향곡은 금관 파트의 활약이 연주의 성패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비중이 절대적이다. 첫 악장 오프닝부터 75분간 이어진 연주 동안 금관 파트의 활약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호른의 유기적 움직임은 완전했고 저음 금관은 마치 파이프오르간의 등장을 연상시킬 만큼 견고했다. 그 위로 피어오른 트럼펫은 화려함의 정점을 찍었다. 반면, 기대했던 4악장은 밋밋하고, 건조했다. 말러는 뉴요커였다. 그의 생애 마지막이었던 1908년부터 1911년까지 그는 아내 알마(Alma), 딸 안나(Anna)와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Upper West Side) 지역과 센트럴파크 인근에서 살았다. 당시 카네기홀을 본거지로 활동하던 뉴욕필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말러를 음악감독으로 선임했다. 말러는 감독직에 오르자마자 절반 정도의 단원을 재선발해 악단의 실력을 강화했고, 연주 횟수도 16회에서 46회로 크게 늘렸으며 악단을 이끌고 피츠버그 지역까지 투어 공연을 다녔다.
그의 유산은 뉴욕필이 세계적 명성의 악단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말러는 1911년 세상을 떠났다. 뉴욕필은 그의 추모음악회에서 교향곡 5번의 1악장을 미국 초연했다.
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
MTT는 2021년 ‘교모세포종’ 수술을 받았다. 이 질환은 악성도가 매우 높은 공격적인 뇌암으로, 진단 후 3~6개월 이내에 사망할 수 있으며 치료가 잘되더라도 평균 생존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의 오케스트라나 오페라극장은 가을에 시즌이 시작된다. 여름 오프 시즌에는 유명 페스티벌의 상주 음악 단체로 활동하거나 해외 투어를 소화하기도 한다. 긴 쉼을 지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즌 오프닝 공연에는 많은 관심이 쏠린다. 미 중부의 명문 악단인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는 올 시즌 오프닝 공연에 임윤찬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조성진을 초청했다.
뉴욕필하모닉의 이번 시즌의 첫 번째 주인공은 MTT였다. 그의 절친이자 뉴요커가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Emanuel Ax)도 함께 참여했다. 두 사람은 수많은 무대를 함께 해왔고 특히 지난 2020년 MTT의 75세 생일 기념 공연에 초청받아 특별한 우정을 이어왔다. 액스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4번은 작곡가의 ‘비엔나 황금기’ 이전에 쓰인 작품이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모차르트는 이 곡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 그는 군데군데 일반적인 화성 진행 패턴을 깨뜨렸다. 특히 1악장에서 카덴차로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총주를 E플랫 장조가 아닌 C단조로 전환하는 수법은 모차르트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파격이다.
이 곡의 초연은 공식 음악회가 아닌 모차르트의 조촐한 사적 모임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그가 이 곡을 실내악 형태의 협주곡으로 염두에 둬서 작곡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날 뉴욕필은 10명의 제1 바이올린을 비롯해 꽤 많은 인원이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큰 그룹이 무대에 오르다 보니 마치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뒤로 숨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인원을 줄여 모차르트 특유의 활력과 에너지를 더했으면 어땠을까.
공연은 목요일 저녁에 시작되었고 금요일과 일요일 공연은 모두 낮 2시에 열렸다. 혼잡을 피해 금요일 낮을 선택했지만, 객석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음악 평론가는 연주 당일이 되어서야 겨우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정 인종이나 연령대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관객들이 평일 낮에 홀을 가득 채웠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3회 공연 중 두 번을 낮에 배치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새로운 관객층을 발굴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성공적이다. MTT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1999년 여름,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던 한 페스티벌에 수석 비올리스트 중 한 명으로 참석해 시벨리우스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연주했다. 또 관객으로서 그의 말러 교향곡 지휘를 지켜보기도 했고 몇 년 후에는 그의 지휘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현대 지휘자 중에서 MTT만큼 말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을까?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함께 말러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며 그는 ‘말러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래서 그가 지휘하는 말러 5번을 만나는 것이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MTT의 뛰어난 역량 중 하나는 순간적인 디테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탁월하다는 점이다. 그는 곡의 큰 윤곽을 잡아두고, 그 기준에 미치지 않거나 혹은 넘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통제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이러한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정교한 컨트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지점들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컬러 펜으로 밑줄을 긋고 형광펜 표시가 있는 참고서적을 보는 것과 같다. 청중은 악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핵심을 꿰뚫는 통찰도 얻게 된다.
5번 교향곡은 금관 파트의 활약이 연주의 성패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비중이 절대적이다. 첫 악장 오프닝부터 75분간 이어진 연주 동안 금관 파트의 활약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호른의 유기적 움직임은 완전했고 저음 금관은 마치 파이프오르간의 등장을 연상시킬 만큼 견고했다. 그 위로 피어오른 트럼펫은 화려함의 정점을 찍었다. 반면, 기대했던 4악장은 밋밋하고, 건조했다. 말러는 뉴요커였다. 그의 생애 마지막이었던 1908년부터 1911년까지 그는 아내 알마(Alma), 딸 안나(Anna)와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Upper West Side) 지역과 센트럴파크 인근에서 살았다. 당시 카네기홀을 본거지로 활동하던 뉴욕필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말러를 음악감독으로 선임했다. 말러는 감독직에 오르자마자 절반 정도의 단원을 재선발해 악단의 실력을 강화했고, 연주 횟수도 16회에서 46회로 크게 늘렸으며 악단을 이끌고 피츠버그 지역까지 투어 공연을 다녔다.
그의 유산은 뉴욕필이 세계적 명성의 악단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말러는 1911년 세상을 떠났다. 뉴욕필은 그의 추모음악회에서 교향곡 5번의 1악장을 미국 초연했다.
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