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는 '갈 수 없는 고향' 박적골을 평생 그리워했다 [서평]
철원의 이태준, 안동의 이육사, 옥천의 정지용, 통영의 유치환….

한국문학사에 큰 흔적을 남긴 작가들의 공간을 여행하면서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책이 나왔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강진호 성신여대 국문학과 교수가 쓴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문학>은 국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활동한 근거지 23곳을 20년 동안 주말마다 여행한 결과물이다. 강 교수는 "논리로 문학을 이해하는 것과 다른 차원으로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공간을 들여다본다.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의 배경은 인천이다. 소설엔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인천의 풍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 저자는 이태준 고택 마루에 앉아 젊은 시절의 이태준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메밀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8월에 봉평을 찾아 이효석의 흔적을 찾기도 한다.
박완서는 '갈 수 없는 고향' 박적골을 평생 그리워했다 [서평]
소설가 박완서에게 의미가 있는 공간은 고향인 박적골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비롯한 소설과 수필 등에선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박적골이 자주 등장한다. 서울의 궁핍한 셋방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그에게 유일한 낙은 방학을 맞아 시골에 내려가는 것이었다고 술회할 만큼, 박완서에게 박적골은 잃어버린 낙원이자, 서울의 빈궁을 견디게 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분단으로 더이상 고향을 찾지 못하게 된 그리움은 박완서의 작품에 고스란히 형상화됐다.

시를 이해한다는 것, 소설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작품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 창작자의 삶을 이해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공간에 서서 그의 삶과 세계, 공기를 만나고 난 뒤엔 작가의 작품이 다르게 읽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