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파리 12구에 위치한 ‘그랑 팔레 이메르시프(Grand Palais Immersif)’ 아트센터에서 한국 사회를 미학적, 문화적으로 재해석한 전시가 열렸다. 제목 ‘디코딩 코리아(DECODING KOREA)’가 암시하듯, ‘경계’, ‘기술’, ‘역사’, ‘환경’ 등의 복잡한 한국 사회의 키워드를 예술을 통해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독한다.
전시장 정면 블루 스크린이 가득 채워졌다가, 이내 푸른색 천 조각처럼 힘없이 흘러내린다. 푸른색 천이 덮은 부분을 보고 있으니, 어딘가 낯익은 형상이 나타난다. 턱을 괴고 구부정히 앉아있는 모습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보미디어 시대에서 블루 스크린 오류메시지는 전통적인 공포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공포로 다가온다.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창구, 스마트폰,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는 것은 마치 일상이 일시적으로 정지된 것과 같이 느껴진다.
이용백의 ‘NFT 미술관: 생각하는 사람(2022)’은 최근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변화- 코로나, 셧다운, 전쟁, 메타버스, AI 등이 야기한 물리적 소통의 단절, 원본 부재의 문제의식을 예술적 주제로 확장 시킨다. 한시적 이미지가 오랫동안 미술사적 의미를 지닌 예술 작품들을 가렸다가 함께 사라지는 아이러니한 모습은, 작품 제목에 명시된 NFT의 보존성과 작품 가치 안정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가가 설정한 1분 30초의 짧은 러닝타임은, 가속화되고 있는 예술의 물리적 가치 변화와 소통의 결핍을 반영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경우 감상자의 몸은 대상과 함께 연동한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의 표현 방법을 통해, 관람자는 다감각적으로 작품을 인식,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의 시간, 운동, 방향의 변화에 따라 보는 이의 시선은 이동하게 되고, 장면에서 장면으로 넘어갈 때 연속적인 지각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 ‘엔젤 솔저(2011)’에서 몸을 반대로 맞대고 조준하는 총의 상반된 방향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방을 포위당한 것 같은 긴장감을 들게 한다.
포춘쿠키의 행운을 잡기 위해 한동안 의자에 앉아 허공을 휘저었다. 람한의 작업 '배부른 운'(2023)은 VR 영상 작품으로, 관람객이 직접적으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VR 안경을 착용하면, 회전 초밥집을 연상시키는 컨베이어 벨트가 보인다. 벨트 위에 무작위로 놓여있는 음식을 핸드 트래킹 기술을 통해 사용자의 입 가까이 가져가도록 유도한다. 음식 먹기를 성공하면, 포쿠키가 생성되고 이를 부수면 Chat GPT가 만든 예언 메모들을 읽을 수 있다.
‘DECODING KOREA’는 백남준의 ‘글로벌 그루브(1973)’을 비롯하여,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의 경험을 묘사한 권하윤의 ‘489년(2016)’, 옛 산수화에 현대 문물이 스며들며, 대한민국의 발전과정을 프로젝터 매핑한 이이남의 ‘잃어버린 파라다이스(2024)’ 등 10명의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담론을 국경을 넘어 글로벌적으로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