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나 하우스콘서트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떤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라는 것이다. 명쾌하게 답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이 질문이 늘 어렵게 느껴진다.

묻는 이는 그저 하우스콘서트에 오래 머문 사람으로의 기억이나 공연 기획자의 특별한 시선이 궁금했을 뿐인데도 언제나 답을 바로 꺼내지 못하고 눈을 위로 치켜들며 머뭇거리곤 하는데, 설상가상인 것은 그 머뭇거림이 날이 갈수록 더 길어진다는 점이다.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단순히 연주가 좋았다는 것의 차원을 넘어 공연이 남긴 의미를 찾기 때문일 것이고, 오랜 시간을 거쳐 수많은 공연을 해왔기에 손에 몇 개만 꼽으라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계절이나 경우에 따라 ‘기억에 남는’의 필터링이 달라져 같은 질문에도 다른 답을 내어놓기도 한다. 어떤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 누군가 지금 내게 이 질문을 다시 건넨다면 지금의 나는 이 공연을 말할 것 같다. 연주가 좋았음은 물론이고, 강렬한 기억과 기록을 남긴 제164회 하우스콘서트다.
제164회 하우스콘서트에서 권혁주와 김선욱 / ⓒ더하우스콘서트
제164회 하우스콘서트에서 권혁주와 김선욱 / ⓒ더하우스콘서트
ⓒ더하우스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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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는 두 젊은 음악가의 만남

2007년 9월 21일, 연희동 하우스콘서트의 문이 활짝 열렸다. 홈페이지에 예고된 대로 '제164회 하우스콘서트 -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공연을 위해서다. 지금은 고인이 된 故 권혁주는 당시 21세, 김선욱은 19세로 가장 촉망받는 젊은 두 음악가가 만나는 이 공연은 일정이 공개되자마자 일찌감치 관객의 호기심과 열기가 느껴졌다.

2004년부터 꾸준히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오르며 국제 대회에서의 우승 기록을 쌓아 올린 김선욱과는 2006년 리즈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1년 만에 갖는 하우스콘서트였고, 바이올린의 신성이라 불리며 일찌감치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온 권혁주와는 첫 만남이었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지금처럼 사전 예약 시스템이 없었던 그때는 몇 명의 관객이 오게 될지 미리 알 수 없었다. 대체로 하우스콘서트의 관객 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문의 전화의 추이를 보며 다른 공연보다는 조금 많겠다는 예상을 할 뿐이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도 반가운 공연인 만큼 기대감에 가까웠다.

그러나 문이 열리고 관객들이 하나둘씩 모이던 그날. 기대감은 불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공연을 하는 2층 공간은 순식간에 관객으로 가득 찼는데, 아직도 입장하지 못한 분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서서라도 보겠다는 간곡한 부탁과 이곳까지 발걸음한 분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2층 공간은 연주자가 겨우 설 자리만 남겨놓고 관객으로 가득 채워졌고, 무대를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분들이 1층 연주자 대기실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일부는 그마저도 어려워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공간을 가득 메운 관객들 / ⓒ더하우스콘서트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공간을 가득 메운 관객들 / ⓒ더하우스콘서트
연주자의 바짓단으로 떨어지는 땀방울

공연이 시작됐다. 빼곡히 앉은 관객을 헤치며 입장하는 두 연주자의 걸음마다 흡사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렸다. 프로그램은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7번,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첫 곡을 마치고 나니 연주자들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무대 앞뒤의 에어컨을 풀 가동했지만, 공간의 열기는 점점 더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관객들은 얼굴에서 악기로, 악기에서 웃옷을 타고 내려와 바짓단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연주자의 땀을 음악과 함께 보았다.

악조건이라 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두 연주자는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으로 훌륭한 연주를 선사했다. 오히려 전례 없는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한 발짝 자유롭게 디딜 수도 없이 무대공간이 충분하게 허락되지 않았고, 땀을 닦으라고 건넨 세면 타올이(손수건이 아닌) 축축하게 젖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날의 공연을 만든 것은 연주자만은 아니라는 점도 밝혀야겠다. “공연을 보러 다니며 연주자의 땀을 맞아본 것은 처음이었다”는 관람기에서 보듯 연주자의 격정적인 몸짓마다 사방으로 튀는 땀을 맞아가며 공연을 본 관객부터, 서로에게 공간을 조금씩 양보해 가며 함께 공연을 볼 수 있게 했던 마음들이 이 공연을 완성했다. 모든 음이 연주되고 난 후에도 연주자가 페달에서 발을 떼고 피아노의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모두가 숨죽인 그 정적은 관객도 이 공연의 일부였음을 증명했다.
ⓒ더하우스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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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지 않는 기록

164회 하우스콘서트는 총 187명의 관객과 함께했다. 25평 남짓한 연희동의 공간은 지금의 대학로에 비해 한참 작은 데다, 이 공연을 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도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연이 소중한 이유는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모두가 음악 그 자체에 집중했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고, 함께 공연을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가끔 상상해 본다. 지금 대학로에 관객 187명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지금은 사전 예약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니 미리 관객 수를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관객들이 현장에 왔다가 돌아가는 일도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187이라는 숫자는 솔직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언젠가 또다시 그런 날을 만나고 싶다. 무대 위의 누군가 전하는 그 음악 하나, 그날의 시간 하나하나가 잠깐의 불편함을 뛰어넘어 평생토록 생생하게 남는 그런 날을 말이다.
ⓒ더하우스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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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주, 그리고 강렬한 기억과 기록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의 조건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 공연 실황을 얼마나 자주 꺼내 듣는가.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한 제164회 하우스콘서트는 이 네 가지를 다 만족하는 공연이다. 하우스콘서트에 역사를 남겨준 이들의 연주를 여러분도 꼭 들어 보시기를.

[제164회 하우스콘서트 연주 실황(2007. 9. 21 권혁주 & 김선욱 공연)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7번 연주 실황]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