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리고 풍토에서 일어선 건축과 공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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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
인간의 삶과 자연을 잇는 예술
자연 본질을 녹여낸 건축 & 공예가 주목 받는 이유
인간의 삶과 자연을 잇는 예술
자연 본질을 녹여낸 건축 & 공예가 주목 받는 이유
자연물을 그대로 사용하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지구상 어딘가에는 큰 나뭇잎, 너른 돌 등을 그릇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릇을 사용하는 것보다 음식의 풍미를 해치고 위생과 안전에 부족하다. 결국 자연재를 공예품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손, 가공이 필요하다. 문제는 가공 즉, 인간이 무엇을 만들어내려면 시간과 재화가 필요하다.
▶ [관련 기사]: 태국은 일회용 접시 대신 '이것' 사용한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상품이 생산되면 그 상품의 가치는 재료와 노동력을 합한 가치 이상이 된다. 초과한 그 가치는 다시 자본이 되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낸다. 가치 증식이 일어날수록 등급이 높아진다.
결국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의식 과잉, 과도한 생산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자본은 결국 자연을 수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본의 착취와 확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통합적이고 근본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 회복과 적극적인 실천뿐이지 않겠나?
우리는 규격화된 공업제품이 범람하고 거대한 물량으로 뒤덮인 다음에야 물질 문화의 비인간화에 눈뜨기 시작했다. 메르스나 코로나19와 같은 접촉성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며 사람들이 건강 추구나 자연과의 조화에 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생태’, ‘공생’이라는 키워드가 더욱 중요하게 주목받는 데는 코로나19가 트리거 역할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사람 냄새가 나고 인간의 체온처럼 따뜻한 건축과 공예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근대화가 남긴 문제들 해결할 열쇠가 가장 느리고, 따뜻한 오랜 공간과 사물, 삶의 방식에 있음을 공감해서가 아닐까?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은 풍토, 환경, 지역의 문맥 속에서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추구했다. 작고한 지 11년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제주 포도호텔과 호텔 인근에 물과 바람, 돌을 화두로 지은 연작 건축물인 수풍석 뮤지엄과 방주교회를 보기 위해 제주를 찾는다. 이타미 준은 흙, 돌, 나무 등 자연 재료를 사용했다. 그래야 시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흉하게 변하지 않는 건축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건축의 지역성을 중시했다. 건축물을 세우기 전에 건축가가 건축물이 들어설 땅, 재료, 사람에게서만 획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문맥을 읽고 재료와 형태로 반영해야만 오래도록 건축이 존립하며 자연 그리고 삶과 괴리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충남 아산의 온양 미술관의 벽돌은 지역의 향토 흙으로 빚었고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을 본떠 지붕을 얹었다. 제주의 포도 호텔 지붕은 제주 지역 전통 민가의 오랜 풍습인 ‘오름’ 형태를 사용했고, 그 옆 풍(風) 박물관은 목재 사이의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도록 해 여백이자 소통의 길을 내었다. 그에게 건축은 자연이고, 시적 언어이며, 자신과 타자를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였다. 우리 땅에서 난 재료를 가지고 최적화된 적정한 공예 기술로 사물을 제작하는 제작 원칙은 공예가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다. 범인들의 매일 의식주에 깊숙이 관여하는 공예품일수록,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원칙이다.
사시사철 뚜렷하고 계절에 따라 필요한 것이 많은 온대지역일수록 다양한 공예품 제작이 발달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토는 좁아도 산과 강이 발달하여 지역별로 환경 차이가 크다.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 기후와 지형에 맞게 형성된 삶의 양태에 맞게 다양한 공예품 제작이 발달했다.
여행을 가면, 한국은 어디를 가도 지역을 대표하는 토산품, 먹거리가 많다는 게 실감 난다. 조선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토산(土産) 목록을 살펴볼 수 있다.
전라남도 담양은 예나 지금이나 명실상부 대나무의 고장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담양에서 올리는 공물 목록에 가는 대, 왕대, 오죽, 화살대, 죽력(竹瀝·대나무를 구워서 나온 진액)의 기록이 있다. 지금도 여름날 서늘하게 습기와 여름벌레들로부터 옷이나 음식물을 귀하게 보관하기에는 채상함(彩箱含)만 한 것이 없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한산모시로 만든 잠자리 날개 같은 옷 걸쳐 입고 전주 선자장(扇子匠)이 만든 큰 부채 하나 들고 문밖을 나서면, 세상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싸고 보듬으니 올 여름나기쯤이야 만만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러할까! 담양에서 멀지 않은 남원은 지리산의 다양한 수종과 질 좋은 목재 수급이 좋아 좋은 목기 구하기가 제격이다. 먹을거리 풍부하고 홍화, 대나무, 쪽 등의 천연염색 자원이 풍부한 나주는 천연 염색으로 유명하다. 지리산의 풍부한 목재와 진주 고유의 문화예술 역사, 솜씨 뛰어난 소목 기술이 만나 진주 소목이 발전했다. 전복, 조개가 많이 나고 인근 내륙과 함안에 질 좋은 옻이 생산되는 통영은 나전칠기가 발달했다. 지역마다 다른 환경에 적응하여 살다 보니 필요한 것이 가지각색 달랐던 사람들의 다채로운 수요와 취향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의 공예문화가 K-문화의 꽃을 피우고 발전하는 바탕이자 저력이 아닐까. 건축, 공예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취향이나 의지보다는 그 땅의 지형, 사람들의 기운, 자연의 언어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먼저다. ‘존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물음이 곧 시작이다. 오늘날같이 복잡하고 돌발적인 상황에서 유효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것을 도모하려면, 지역의 문화층과 역사성을 토대로 보편적인 문맥을 확장해 현재로 끌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대적인 사실성을 얻을 수 없다. 갈수록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 속에서 뽑아낸 본질을 녹여낸 건축, 공예가 국적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지수 공예평론가•미술학박사·CraftMIX 대표
▶ [관련 기사]: 태국은 일회용 접시 대신 '이것' 사용한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상품이 생산되면 그 상품의 가치는 재료와 노동력을 합한 가치 이상이 된다. 초과한 그 가치는 다시 자본이 되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낸다. 가치 증식이 일어날수록 등급이 높아진다.
결국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의식 과잉, 과도한 생산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자본은 결국 자연을 수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본의 착취와 확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통합적이고 근본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 회복과 적극적인 실천뿐이지 않겠나?
우리는 규격화된 공업제품이 범람하고 거대한 물량으로 뒤덮인 다음에야 물질 문화의 비인간화에 눈뜨기 시작했다. 메르스나 코로나19와 같은 접촉성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며 사람들이 건강 추구나 자연과의 조화에 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생태’, ‘공생’이라는 키워드가 더욱 중요하게 주목받는 데는 코로나19가 트리거 역할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사람 냄새가 나고 인간의 체온처럼 따뜻한 건축과 공예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근대화가 남긴 문제들 해결할 열쇠가 가장 느리고, 따뜻한 오랜 공간과 사물, 삶의 방식에 있음을 공감해서가 아닐까?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은 풍토, 환경, 지역의 문맥 속에서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추구했다. 작고한 지 11년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제주 포도호텔과 호텔 인근에 물과 바람, 돌을 화두로 지은 연작 건축물인 수풍석 뮤지엄과 방주교회를 보기 위해 제주를 찾는다. 이타미 준은 흙, 돌, 나무 등 자연 재료를 사용했다. 그래야 시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흉하게 변하지 않는 건축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건축의 지역성을 중시했다. 건축물을 세우기 전에 건축가가 건축물이 들어설 땅, 재료, 사람에게서만 획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문맥을 읽고 재료와 형태로 반영해야만 오래도록 건축이 존립하며 자연 그리고 삶과 괴리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충남 아산의 온양 미술관의 벽돌은 지역의 향토 흙으로 빚었고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을 본떠 지붕을 얹었다. 제주의 포도 호텔 지붕은 제주 지역 전통 민가의 오랜 풍습인 ‘오름’ 형태를 사용했고, 그 옆 풍(風) 박물관은 목재 사이의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도록 해 여백이자 소통의 길을 내었다. 그에게 건축은 자연이고, 시적 언어이며, 자신과 타자를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였다. 우리 땅에서 난 재료를 가지고 최적화된 적정한 공예 기술로 사물을 제작하는 제작 원칙은 공예가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다. 범인들의 매일 의식주에 깊숙이 관여하는 공예품일수록,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원칙이다.
사시사철 뚜렷하고 계절에 따라 필요한 것이 많은 온대지역일수록 다양한 공예품 제작이 발달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토는 좁아도 산과 강이 발달하여 지역별로 환경 차이가 크다.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 기후와 지형에 맞게 형성된 삶의 양태에 맞게 다양한 공예품 제작이 발달했다.
여행을 가면, 한국은 어디를 가도 지역을 대표하는 토산품, 먹거리가 많다는 게 실감 난다. 조선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토산(土産) 목록을 살펴볼 수 있다.
전라남도 담양은 예나 지금이나 명실상부 대나무의 고장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담양에서 올리는 공물 목록에 가는 대, 왕대, 오죽, 화살대, 죽력(竹瀝·대나무를 구워서 나온 진액)의 기록이 있다. 지금도 여름날 서늘하게 습기와 여름벌레들로부터 옷이나 음식물을 귀하게 보관하기에는 채상함(彩箱含)만 한 것이 없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한산모시로 만든 잠자리 날개 같은 옷 걸쳐 입고 전주 선자장(扇子匠)이 만든 큰 부채 하나 들고 문밖을 나서면, 세상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싸고 보듬으니 올 여름나기쯤이야 만만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러할까! 담양에서 멀지 않은 남원은 지리산의 다양한 수종과 질 좋은 목재 수급이 좋아 좋은 목기 구하기가 제격이다. 먹을거리 풍부하고 홍화, 대나무, 쪽 등의 천연염색 자원이 풍부한 나주는 천연 염색으로 유명하다. 지리산의 풍부한 목재와 진주 고유의 문화예술 역사, 솜씨 뛰어난 소목 기술이 만나 진주 소목이 발전했다. 전복, 조개가 많이 나고 인근 내륙과 함안에 질 좋은 옻이 생산되는 통영은 나전칠기가 발달했다. 지역마다 다른 환경에 적응하여 살다 보니 필요한 것이 가지각색 달랐던 사람들의 다채로운 수요와 취향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의 공예문화가 K-문화의 꽃을 피우고 발전하는 바탕이자 저력이 아닐까. 건축, 공예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취향이나 의지보다는 그 땅의 지형, 사람들의 기운, 자연의 언어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먼저다. ‘존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물음이 곧 시작이다. 오늘날같이 복잡하고 돌발적인 상황에서 유효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것을 도모하려면, 지역의 문화층과 역사성을 토대로 보편적인 문맥을 확장해 현재로 끌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대적인 사실성을 얻을 수 없다. 갈수록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 속에서 뽑아낸 본질을 녹여낸 건축, 공예가 국적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지수 공예평론가•미술학박사·CraftMIX 대표